농심 라면수프 원료에서 또 '발암물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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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라면 원료를 생산하는 농심 계열사 ‘태경농산’(대구시 달성군)이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과다 검출된 고추씨기름을 수프 원료로 사용하다 식품안전 당국의 행정조치를 받았다. 농심과 태경농산은 지난해 10월에도 일부 라면 수프 원료(가쓰오부시)에서 벤조피렌이 검출돼 회사 관계자가 벌금형을 받았다.

 19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태경농산이 수입한 중국산 고추씨기름(16.7t, 지난해 12월 13일 통관)에서 3.5ppb(ppb는 10억분의 1)의 벤조피렌이 검출됐다. 이는 벤조피렌의 식용 허용기준인 2ppb를 초과하는 양이다.

 수입 고추씨기름은 태경농산에서 생산한 ‘볶음양념분 1호’와 ‘볶음양념분 2호’에 사용됐다. 이 양념분은 일부 라면 수프에 들어갔다. 다만 양념분에선 벤조피렌(최고 1ppb)이 기준치 이하로 검출돼 ‘자진 회수’ 결정이 내려졌고, 라면 수프 자체에선 벤조피렌이 검출되지 않았다. 따라서 식약청과 전문가(동국대 식품생명공학과 신한승 교수)들은 이번에 적발된 고추씨기름을 사용한 수프가 인체에 해를 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기준치를 초과한 벤조피렌이 들어 있는 고추씨기름을 걸러내지 못하는 허술한 수입 통관 시스템이다. 식약청은 1월 9일 익명의 제보를 받고서야 조사에 나섰다. 게다가 1월 24일 벤조피렌 검사가 시작돼 이달 14일에야 결과가 나오는 등 늑장 대응을 했다.

 또 식약청이 4개월 만에 다시 벤조피렌 사건에 연루된 태경농산에 대해 행정조치 중 가장 가벼운 ‘시정명령’만 내린 건 솜방망이 처벌이란 지적이다.

 농심 측은 “자체적으로 고추씨기름 입고 때 검사를 했고 당시엔 벤조피렌 검출량이 기준치 이하였다”고 해명했다. 농심 관계자는 또 “벤조피렌은 한국·유럽연합(EU)만 기준을 두고 있다”며 “유럽인은 한국인에 비해 벤조피렌 노출량이 7배나 높은데 한국이 유럽과 같은 기준(2ppb)을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한편 식품업계는 “지나치게 엄격한 벤조피렌 기준이 문제”라고 반발했다. 벤조피렌은 참기름이나 들기름 등 볶은 후 짜내는 방식의 제조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농심뿐 아니라 CJ참기름 등도 문제가 됐었다”며 “세계에서 제일 엄격한 벤조피렌 기준대로 검사할 경우 자유로운 식품업체가 한 곳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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