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과 도발의 '캬바레' 삼류댄서 최정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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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타 최정원(32) 이 관능적인 춤꾼으로 변신해 새해를 맞는다. 출연작은 '캬바레'다. 15년 배우 인생의 16번째 작품이다. 그야말로 '장기집권'의 스타치고는 출연작이 그리 많지 않아 놀라웠다.

"요즘이야 1년에 서너편도 출연하지만 이전에야 그랬나요. 작품이 턱없이 부족해 한 작품으로 지방공연까지 돌며 한해를 보내던 시절도 있었는 걸요."

16년 전 초연 이후 다시 선보이는 '캬바레'에서 최씨가 맡은 역할은 여주인공 샐리 보울스다. 그녀는 싸구려 캬바레 '킷 캣 클럽(Kit Kat Klub) '의 삼류 무희이자 가수다. 어느날 미국에서 날아온 순진한 소설가(클리포드 브래드쇼) 와 사랑에 빠지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끝내 헤어지고 마는 미련의 사이다.

"이 작품은 시대 배경을 주목해야 돼요. 독일의 나치가 등장하기 전 불안에 떨고 있는 시민들의 정서가 녹아 있기 때문이죠. 샐리의 비애도 바로 이런 불우한 시대의 산물입니다."

최정원, 아니 샐리가 부르는 주제가 '캬바레'에는 그런 사람들의 염세주의가 반어법적으로 잘 묘사돼 있다. "방 안에 틀어박혀 무료하게 시간만 죽이지 마세요. 음악이 있는 이곳으로 오세요. 인생은 캬바레 같은 것. 캬바레로 오세요."

'캬바레'에는 두 가지의 사랑이 교직(交織) 된다. 샐리와 클리포드와의 사랑, 그리고 유대인 가게 주인 슐츠와 여관집 여자 슈나이더와의 사랑이다. 전자는 이상이 맞지 않아서, 후자는 인종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한다.

"비록 내용은 무겁지만 무대는 정말 관능적이고 눈요깃거리가 많아요. 거의 속옷 차림의 팔등신 미녀들이 혼을 빼놓지요.노래도 고혹적이구요. 한가지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소름끼칠 정도로 무표정하다는 거예요. 의무적으로 춤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의 아픔이 그 속에 담겨 있습니다."

현재 이 작품의 브로드웨이 공연에는 한때 영화계의 스타였던 브룩 실즈가 샐리로 출연한다. "안무(레자이나 알그렌) 가 연습을 보더니 브룩 실즈보다 춤과 노래가 월등하데요. 심각하면서도 순간순간 코믹 요소를 드러내야 하는 연기도 그렇구요. 저의 색다른 면모를 보여줄 겁니다."

최정원에겐 작품 선정에 관한 불문율이 하나 있다. 언제나 직전에 한 작품과는 등장인물의 성격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팬들이 식상해하지 않거든요. '캬바레'가 흥미있는 것도 '틱,틱… 붐!'의 지순한 수전과 지극히 대비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몸에 장미문신도 새기고 마약도 하며 담배에 찌든 삼류 무희. 얼마나 도발적이에요."

얼마전 최정원에게 일본 진출 기회가 찾아왔었다. 일본 최대의 흥행 극단인 시키(四季) 로부터 '콘택트' 등의 작품에 출연하겠느냐는 제의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고민 끝에 꿈을 접었다. 대신 우리 작품으로 일본 시장을 공략하는 데 전초(前哨) 가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캬바레'이후 5~6월 일본 13개 도시 순회공연을 가는 '갬블러'는 그녀 뿐만 아니라 한국 뮤지컬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최정원과 남편 임영근(코리아픽쳐스 공연예술팀장) 씨 사이에는 '유명한' 딸이 하나 있다. 장안의 화제가 됐던 수중분만으로 태어난 27개월 된 수아다. 최정원은 "연습과 공연으로 매일 별을 보고 귀가하는 처지지만 딸만 보면 만사의 시름을 잊고 다시 무대로 달려나가는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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