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과잉시대, 뮤지션 변신은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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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빅뱅 ‘판타스틱 베이비’의 뮤직비디오 중 지드래곤 출연 장면. 지드래곤은 솔로로도 활동하며 음악적 기량을 보여줬다. [사진 YG엔터테인먼트]

아이돌의 체질개혁인가, 아니면 임시변통인가. 가요계에 ‘아이돌에서 뮤지션으로’ 변화 바람이 일고 있다.

 일례로 7인조 그룹 인피니트의 장동우와 호야는 힙합 유닛(unit) ‘인피니트 H’를 결성해 힙합 뮤지션으로 변신을 꾀했다. 또 JYJ의 재중은 솔로 미니앨범에서 뼛속까지 록 뮤지션인 김바다와 협업을 통해 로커로 변신했다.

 아이돌 밴드 씨엔블루는 자작곡으로 채운 4번째 미니앨범 ‘Re : BLUE’를 발표하고 올 라이브 컴백무대를 꾸미는 등 ‘뮤지션’으로 진화하려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지난해 새로 결성된 신예 아이돌 그룹만 50팀 이상.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무한 경쟁의 아이돌 시장에서 ‘뮤지션’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마케팅 용어로 남용된다는 비판도 있다.

 ◆기획사의 개성 vs 멤버의 개성=전문가들은 아이돌과 뮤지션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음악의 주체성’이라고 말한다. “주어진 게 아닌, 자신만의 개성이 있는가”(음악평론가 임진모) , “멤버가 주체가 되어 음악을 생산하고 방향을 결정하는가”(음악평론가 김작가), “음악적 철학이 있는가”(문화평론가 강태규), “음반이 창의적인 작품인가”(음악평론가 박준흠) 등을 충족시키는 게 뮤지션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기준에서 아이돌 중 뮤지션의 요건을 충족시키는 사례로는 빅뱅의 지드래곤과 태양이 첫손에 꼽혔다. 음악작가 배순탁씨는 “YG는 소속 아이돌을 뮤지션으로 성장시키고 그걸로 회사의 이익도 창출하는 작업을 잘 하고 있다. 가령 ‘원 오브 어 카인드’ 처럼 기존 아이돌 음악과는 차별화되는 곡을 지드래곤이 만들었다는 점은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임진모씨는 “한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아이돌이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남이 준 곡을 소화하고 연기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표현의 세계를 갖는다는 건 분명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준흠씨는 “아이돌은 연습생 시절부터 기획사와 종속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콘텐트가 창의적이지 않으니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뮤지션은 불가능한 꿈이다. 뮤지션이 되려면 기획사에서 나와 독립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춤을 추든 악기를 연주하든 또 다른 형태의 아이돌일 뿐”이라고 말했다.

 ◆‘핸드 싱크’ 하는 뮤지션?=씨엔블루를 상대로 인디 밴드의 대표주자 크라잉넛이 최근 저작권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 화제가 됐다. 씨엔블루가 신인 시절 Mnet 음악프로에서 크라잉넛의 음원을 틀어놓고 연주하는 흉내만 냈고, 그 영상을 DVD에 담아 일본에 수출까지 했다는 것이다.

 뮤지션을 지향하던 밴드의 이미지는 큰 타격을 입었다. 배순탁 작가는 “아이돌도 얼마든 뮤지션으로 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음악과는 무관한 연예 프로그램에 나오다 갑자기 자작곡을 만들었으니 뮤지션으로 봐 달라고 해도 대중이나 평단이 실력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클럽에서 공연하는 인디 밴드와는 달리 아이돌은 라이브 공연이 드물고, 예능이나 드라마에 출연해 수익을 올리는 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강태규씨는 “음악적 주체성이 생기게끔 소속사가 배려해주지 않는다면 뮤지션은커녕 ‘상품’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임진모씨도 “아이돌 출신이라는 딱지가 쉽게 떼어지는 게 아니다. 씨엔블루 사태는 뮤지션 되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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