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다국적기업 잇따라 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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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파업 50일째를 맞은 베네수엘라에서 외국 기업들이 속속 철수해 이 나라 경제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안전상의 이유로 베네수엘라 지사를 잠정 폐쇄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관계자는 "카라카스시에서 근무 중인 판촉 및 지원요원 85명의 신변안전을 위해 이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베네수엘라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올 들어 미국의 포드자동차.코카콜라와 영국의 로열 더치 셸 등 다국적 기업들이 사무실을 폐쇄하고 철수하거나 사업을 대폭 축소했다.

안토니오 에레라 바일란트 베네수엘라 미국 상공회의소 회장은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이 이미 영업을 중단했다"며 "외국기업 중에는 투자자본을 회수하고 아예 완전 철수하는 회사들도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21일 인터넷판에서 "총파업 장기화로 베네수엘라가 국가파산의 위기에 몰리고 있으며, 정부가 석유생산을 재개하지 못할 경우 몇 주 이내에 해외 부채에 대해 지급불능(디폴트)을 선언해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베네솔라노 드 크레디토은행의 오스카 가르시아 은행장은 "대외 부채가 한계 수준에 달했다"며 "정부는 이미 사실상 파산한 상태며 디폴트 발생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분석가들은 베네수엘라가 1백10억달러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은 문제가 없겠지만 파업이 계속될 경우 디폴트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분석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사임과 조기 총선 실시를 요구하는 총파업으로 세계 5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3백만배럴에서 30만배럴로 줄었다.

이에 따라 베네수엘라는 사상 처음으로 브라질 등 인접국에서 석유를 긴급 수입해다 쓰고 있는 상황이다.

석유 수출이 급감하자 베네수엘라의 정부 재정도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베네수엘라 최대의 국영 석유회사 페트롤레오스 데 베네수엘라(PDVSA)는 지금까지 최소 20억달러의 손실을 봤으며 이로 인해 국가세입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IMF 등 국제 금융기구들은 올 국내총생산(GDP)이 1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또 달러 수요가 급증해 볼리바르화 가치는 폭락세를 보이고 있다.

또 수만명의 반(反) 차베스 시위대가 세금납입 거부운동을 벌이며 국가재정을 압박하고 있고, 미국 등 선진국들도 파업사태가 더욱 악화할 경우 원유 도입선을 다른 국가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임봉수 기자

<사진설명>
베네수엘라 군인들이 지난 17일 수도 카라카스에서 동쪽으로 66마일 떨어진 발렌시아의 코카콜라 공장 안에서 기관총으로 무장한 채 경비를 서고 있다. 군인들은 파업으로 인한 식료품 부족 사태를 완화하기 위해 이 공장을 장악하고 제품을 직접 공수하고 있다. [발렌시아 로이터=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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