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연극 '오구'의 '감동 경영'

중앙일보

입력

#1

지난 13일 이윤택 연출의 연극 '오구'를 보러 정동극장에 갔다. 4백여석의 객석이 빈곳 하나 없이 꽉 찼다. 보조석도 전혀 여유가 없었다. 극장 양측의 계단은 물론 극장 뒤 좁은 공간까지 '관객의 바다'를 이뤘다. 여기저기서 불평이 튀어나왔다.무대에선 벌써 연극이 시작됐는데 50대 초반의 남성 관객 한분이 목청을 높였다.

"왜 이리 사람이 많아. 어떻게 연극을 보란 말이야. 극장측에서 조정을 했어야지."

극장측의 서비스 부재를 탓한 것이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의식한 때문이지 '문제의 관객'은 금새 조용해졌다. 불편한 자리를 감수하고 연극에 빠져들었다.

#2

두 시간 반 가량의 공연이 끝났다. 관객들은 6.25때 남편을 잃고 떡장수를 하며 두 자식을 키운 할머니(강부자) 의 마지막 순간을 한바탕 굿판으로 풀어낸 '오구'에 흠뻑 젖어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공연은 무대가 막을 내리고도 끝나지 않았다.'연극 밖 연극'이 또 하나 기다리고 있었다. 배우들이 연극이 끝난 후 극장 로비에서 나가는 관객들에게 우리 고유의 신명난 장단을 선물하는 것이다.

일부 관객은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공연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불쾌한 감정이 사라졌다. 극단측의 작은 정성이 연극 이상의 감흥을 준 셈이다.

#3

극장을 나서는 데 출구가 꽉 막혔다. 배우 강부자씨가 관객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잘 보셨나요,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나가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른바 '감동 경영'의 현장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오구'의 저력이 이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난 12일로 1천5백회 공연. 1989년 이후 13년만의 기록이다. 지금까지 1백만여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막이 내려도 관객에게 최선을 다하는 '애프터서비스'정신의 승리다.

'오구'는 16일 막을 내렸다. 내년에는 영화로 만들어진다. 연극에 쏟은 작은 정성이 영화 속에선 어떻게 재현될까. 연극도 살고, 영화도 사는 '윈-윈'전략이 문화판에도 생겨나길 기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