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파키스탄 모델’로 가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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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호 01면

16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자유북한 운동연합 회원들이 북한의 핵실험 규탄성명을 발표한 뒤 대북전단 살포 준비를 하고 있다. [뉴시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예고한 가운데 미국이 북한 비핵화보다 비확산에 무게를 둬 북핵 문제가 ‘파키스탄 모델’로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파키스탄의 핵 개발 초기에 강력한 제재조치를 가했지만 일단 핵무기를 보유하자 초점을 비확산으로 바꿔 개도국의 핵보유국화를 묵인한 전형적 사례다. 외교안보 분야의 전·현직 당국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일단 핵무기 보유하면 미국이 결국 묵인

▶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북한 핵을 방치하면 곧 파키스탄급 핵무기 국가의 길을 갈 것이다.”

▶ 이수혁 전 6자회담 대표=“북한이 파키스탄화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비핵화에 올인했다면 방법이 있었을 텐데 불필요한 것들이 끼어들며 북한에 빌미를 제공했다. 정말 북한 핵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 다른 선택들을 했을 것이다.”

▶ 신범철 국방연구원(KIDA) 북한군사연구실장=“미국의 비확산엔 비핵화가 포함된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사례처럼 미국의 압력이 변하면서 북한이 핵 국가로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미동맹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미국이 비확산으로 나가면 우리는 더 세게 나가야 한다.”

▶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핵보유국이 되려면 핵실험이란 기술적 문턱과 핵무기 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는 정치적 문턱을 동시에 넘어야 하는데 파키스탄은 기술적 문턱만 넘었다. 북한도 기술적으론 핵보유국이라 해도 정치적으로 인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파키스탄의 줄피카르 부토 총리는 1974년 인도가 핵실험에 성공하자 “풀을 뜯어먹고 살더라도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미국은 프랑스를 압박해 우라늄 농축 시설을 파키스탄에 팔지 못하게 하는 등 직접 제재에 나섰다. 그러나 98년 5월 인도가 또다시 핵실험을 하자 파키스탄은 5월 28일, 30일 연속 핵실험을 실시했다. 이어 북한의 노동 미사일을 반입해 압둘 칸 박사를 중심으로 핵무기 제조에 성공했다. 미국의 연이은 제재엔 일관성이 없었다. 9·11 테러 뒤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문에 제재조치를 대부분 해제하고 말았다. 파키스탄은 현재 80~120여 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외교적 고려에 따라 제재조치가 흔들리고, 비핵화에서 비확산으로 정책을 바꾸면서 빚어진 사태다.

북한 핵에 대한 미국의 공식 입장은 북핵 불인정과 비핵화다. 하지만 실제론 북핵 보유를 전제로 비확산에 무게를 두는 정책 흐름이 드러나는 양상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대선 유세 때인 2007년 10월 “인도와 파키스탄, 북한이 핵무장 국가 클럽에 합류했다…북한은 핵무기 8개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도 2009년 “북한이 여러 개의 핵폭탄을 제조했다”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발언도 주목된다. 2010년 3월 30일 주요 8개국(G8) 외교장관회담 때 북한을 ‘핵무기를 보유한 불량국가’라고 지칭했다.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진 것이다. 지난 13일엔 민주당 소속 로버트 메네데즈 상원 외교위원장이 ‘북한의 핵 확산 및 다른 목적으로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민주·공화 양당 7인의 이름으로 발의했다. 비핵화보다 비확산에 중점을 둔 법안이다. 존 케리 신임 국무장관은 같은 날 “북 핵실험을 비확산 차원에서 강력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5p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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