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재 노다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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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제 본보가 보도한 낙선재에서 나온 노다지 자료는 아연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문학사를 고쳐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는, 그 동안에 치른 모든 입학 시험의 무효론을 펴는 성급한 익살꾼도 있다. 기왕에 알려지지 않았던 문화재가 햇빛을 보게 되었으니 경사스럽기 한량없다. 이씨 왕조의 마지막 왕후가 주고간 귀한 선물이기도 하다.
그렇게도 훌륭한 것이, 또 그토록 방대한 양의 자료가 어째서 이제까지 현신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공가 사가할 것 없이, 값있는 물건이면 샅샅이 뒤져 낸 일인학자들의 손이 낙선재에 미치지 못했던 이유는 또 무엇일까. 그러나 이제 와서 그런 일을 궁리해 봐도 부질없는 노릇. 이젠 문고문을 다시 닫고, 훈련을 쌓은 원전학도들의 과학적인 정리와 평가 작업에 기대를 걸어볼 뿐이다.
연조가 오래고 귀중한 자료일수록 극히 우발적으로 발견되는 버릇이 있다. 서양인들에게 귀중한 자료라면 성경의 원전보다 더할 것이 없다. 신약의 원전으로서 제일 귀중한 것은 지금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코텍스·시나이티쿠스」라는 고본인데, 기원 4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본은 무려 1천5백년후인 1859년에「시나이」산의 한 수도원에서 발견되었다.
무식한 이교도가 아닌 수도원 사람들이 왜 그토록 귀중한 자료를 19세기 중엽까지 사장해 두었는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후 그 고본은 「러시아」황제의 손에 들어갔다. 그 보물을 빼내오고 싶어 한 영국인들 중에는 「런던」에 묻혀 있는 「마르크스」의 시체하고 「러시아」에 가 있는 「시나이」고본을 맞바꾸자고 떠들어 댄 사람까지 있었다. 결국 영국 정부가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사들임으로써 비로소 보다 큰 광명의 세계로 옮겨 앉힐 수 있었다. 낙선재의 자료가 과연 귀중하고, 획기적인 발견물이라고 치더라도, 단순히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는 대견할 수 없다. 발견된 자료를 어떻게 정리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번 수확이 계기가 돼서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원전 비평이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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