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파 전성시대' 안방극장 점령

중앙일보

입력

개성파 연기자들이 사극열풍에 휩쓸려 자리를 찾지 못하던 '비(非)사극 드라마'들의 인기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시청률 조사전문기관 TNS 미디어 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주 시청률 순위에서 20위 안에 들어있는 '비사극 드라마'는 MBC '여우와 솜사탕'(4위. 25%), KBS 1TV '사랑은 이런거야'(5위. 24.4%), SBS '피아노'(6위. 23.8%), SBS '화려한 시절'(16위. 17.8%), KBS 1TV '새엄마'(19위. 17.3%) 등 모두 5편. 한때 사극에 쏠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지못해 고전하던 비사극들이 조금씩 제 몫을 찾아가고 있는 모습을보여준다.

이들 가운데 '사랑은 이런거야'를 제외하면, 한결같이 주연급 연기자들의 물오른 개성파 연기가 두드러진 작품들이 순위에 올라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개성파 연기자들이 드라마의 인기에 중요한 몫을 담당해왔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들이 담당했던 역할이 대부분 맛깔스러운 조연에 불과했다는 점에 비춰볼때, 최근의 흐름은 드라마계에 부는 새로운 흐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뛰어난 외모와 고정된 이미지만을 가지고 연기생활을 해온 일부 주연급 연기자들에게 각성의 계기를 마련해줄 수도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연기자는 '피아노'의 조재현과 '화려한 시절'의 류승범이다.

김기덕 감독의 단짝으로 영화계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내며, 연기력을 다져왔던 조재현은 오랜만에 드라마의 주연을 맡아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비록 중, 후반부로 가면서부터는 젊은 연기자들에게 바통을 넘겨주게 되지만, 드라마 초반부에서 혼자 극을 이끌어가던 조재현의 변화무쌍한 연기력은 시청자들의 감탄을 자아내고있다. 초라하고, 비열하기 이를데 없는 3류건달 한억관을 과장섞인 코믹한 모습으로 멋지게 그려내더니, 최근에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가족과 자식에 대한 사랑을 깨달아가면서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등장해, 시청자들의 누선을 자극하고 있는 것. '화려한 시절'의 류승범은 드라마가 처음 시작될 당시 시청자가 어리둥절해 할 정도로 낯설었던 연기자. 이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그의 연기경력은 저예산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와이키키 브라더스' 에 출연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그는 방송이 시작된지 두달이 채 지나지 않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기스타가 돼버렸다. 야간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온갖 말썽을 피우는 '양아치' 고등학생 연기를 리얼하게 소화해내고 있기 때문. 류승범은 한편, 형과 가족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내면을 은근히 내비치는 속깊은 모습도 어색하지 않게 연기하고 있어 시청자들의 신뢰감을 갈수록 높여가고 있다.

'여우와 솜사탕'의 유준상도 빠질 수 없다. 지난해 말 KBS 2TV '태양은 가득히'에서 출세에 눈이 먼 냉혈한으로 출연, 주연급 연기자로 자리를 굳혔던 그는 MBC주말극으로 자리를 옮긴 뒤부터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으고있다. 12세 연하의 안선녀와 사랑에 빠진 호탕한 성격의 노총각 봉강철로 출연중이다. 봉강철은 다혈질적인 성격 탓에 사고도 많이 치지만, 배짱 두둑하고 입심 좋은 시원시원한 성격의 인물. 이밖에 '태조왕건'에서 종간으로 열연했던 '새엄마'의 김갑수는 자신의 냉철하고, 진지한 지식인 이미지를 깨버린 채, 부인을 무던히도 속썩이는 바람둥이 역할을 무리없이 연기해내면서, 타고난 연기자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여우와 솜사탕' 을 연출하는 정인PD는 "연기자는 고정된 이미지나 뛰어난 용모보다는 연기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개성있는 주연들이 주목받는 현상은 시청자들의 수준이 높아져 탤런트들이 갖고 있는 독특한 연기력을 평가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연합) 최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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