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 교수 '영어로 배우는 논어' 펴내

중앙일보

입력

"도올 김용옥씨에 대한 비판을 하기 위해 책을 낸 것은 아니예요."

올해 초 김용옥씨에 대한 비판으로 화제를 모았던 서지문(고려대 영문과) 교수가 논어 해설서 『서지문교수와 함께 영어로 배우는 논어』(창작시대, 전2권) 를 펴냈다.

11일 오후 덕수궁 부근 한 카페에서 만난 서교수는 도올을 비판하는 책이 아니라고 애써 강조하며 감정을 감추고자 했다. 하지만 대화 중간중간, 그리고 책의 행간에서 지난 봄 논쟁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지는 못한 듯 했다."20년 전 배운 논어를 김용옥씨의 TV 강의를 계기로 다시 본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에 논어 해설서를 펴낸 것은 서구의 학자들이 공자라는 인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느낌과 이해도의 차이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예요."

책은 제목처럼 영어와 한문, 그리고 한글로 된 논어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게 한 점에서 눈길을 끈다. 서구의 동양학자들이 영역(英譯) 한 논어를 한자 원문과 나란히 놓아 비교할 수 있게 한 뒤 그 밑에 한글로 번역한 글과 영역본에 대한 서교수 자신의 해설을 붙였다.

논어 해설의 독창성면에서 큰 의미를 찾기는 힘들다. 그러나 동양의 대표적 고전인 논어를 서구인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일반 독자들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만으로도 책은 의미 있다. 서양의 논어 이해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함과 동시에 한자를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가졌을 번역자들의 고충도 함께 느껴 볼 수 있다.

예컨대 논어의 핵심 개념인 '인(仁) ','학(學) ','군자(君子) '를 영어권 동양학자들은 다양한 각도로 번역하면서 단순히 지식의 축적을 넘은 도덕적 깨달음까지 표현하기 위해 영어권에선 없는 표현을 찾아내고자 애쓰고 있다. 이같은 서구인의 논어, 나아가 동양세계에 대한 이해를 다시 동양의 독자들에게 알리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20년 넘게 논어에 관심을 가져온 한국의 영문학자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물론 이런 작업은 국내 동양학계에서 진작 했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른바 '도올 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그의 감회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여름방학 내내 이 책 두 권을 쓰며 보냈어요."

서교수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고려대 영문과 교수로 부임한 1978년부터 꼬박 1년간 현재 민족문화추진연구회에 재직하는 정태현 교수에게서 논어를 배웠다고 한다. 그는 이 책을 정태현 교수에게 헌정한다고 밝혔다.

서교수가 좋아한다는 '태백(太伯) '장의 한 구절에서 이 책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자왈(子曰) , 호용질빈(好勇疾貧) , 난야(亂也) . 인이불인(人而不仁) , 질지이심(疾之已甚) , 난야(亂也) ." 이 구절을 서교수는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용맹을 좋아하면서 가난을 싫어하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게 되고, 인하지 못한 사람을 너무 미워하면 사회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고 풀이한다. 여기서 '인하지 못한 사람(人而不仁) '이라는 풀이는 서교수가 영역본을 참고해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대목 뒤에다 서교수는 "가끔 정의파임을 내세우면서 지극히 독선적인 사람을 보고 곤혹스러워질 때마다, 불인한 것을 미워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옳은 일이지만 그것도 정도가 지나치면 곤란하다는 생각을 하며 이 구절을 떠올린다"고 덧붙였다. 서교수가 책에서 인용.해설한 영역본은 모두 14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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