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서정춘씨, 박용래문학상 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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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는 훗승에서 개구리가 되었을라/상칫단 씻다 말고 그리고… 그리고… /아욱단 씻다 말고 그리고… 그리고… /죽은 홍래누이 그립다가 그리고… 그리고… /박용래는 훗승에서 그리고로 울었을라"

시인 서정춘(사진) 씨가 제3회 박용래문학상을 수상한다. 수상작은 시집 『봄,파르티잔』이고 시상식은 12일 오후2시 대전 대전일보사 강당에서 열린다.

서씨는 위 시 '박용래'를 『창작과비평』올 가을호에 발표했다."상칫단 씻는/아욱단 씻는/오리(五里) 안팎에 개구리 울음"으로 시작되는 박용래(1925~80) 시인의 시 '저문 산(山) '에 빗대 시인의 끝간데 없는 순수의 울음을 운 시다.

시가 모던한 기교에 의해 극히 응축돼 있으면서도 행간에 울음이 가득 차 있는데에 두 시인의 시는 공통점이 있다. 시적 형식이나 언어의 부림에 있어서는 서구적 모더니즘에 세례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비의 지조와 함께 조선의 정한을 기품있게 울고 있는 것이 두 시인의 시다.

"내 시를 어떻게 감히 박선생님의 시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순도 99.9%의 백수 기질에 술꾼 체질이 좀 닮았다고나 할까요. 해찰깨나 떨어온 것도 좀 닮은 것 같으나 그 분은 모래알을 이슬 방울로 만들수 있는 순정한 모국어의 달인이었으나 나는 앞으로 한 40년쯤 후에나 그 경지가 보일 것 같으니… ."

소설가 이문구씨는 박시인을 "나물밥 30년에 구차함을 느끼지 않았고,곁두리 30년 탁배기에도 아쉬움을 말하지 않았다"고 추모한다. 변변한 직장 마다하고 삶을 해찰하며, 탁배기 잔에 울며 불며 하면서도 가슴은 늘 시인이었던 박시인에 대해 이씨는 충청도 욕쟁이 할머니 말을 빌어 짐짓 "영낙 없는 철딱쉥인디, 그래도 이런 세상에 그런 이를 워디서 귀경허겄냐□"고 묻고 있다.

21세기의 '철딱쉥이, 그런 이'가 바로 서씨다.

전남 순천의 야간고 출신으로 사랑하는 처녀와 대책없이 담보짐을 싸 상경한 서씨는 68년 "당선자와 내 이름이 두 자나 같아 오해의 소지가 있겠지만 출중한 시재를 묻힐 수는 없다"는 서정주 시인의 심사평과 함께 한 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온다.

그 뒤 자신을 스스로 낯추며 문단 곁두리로 행세하다 등단 30년이 다 된 지난 96년에야 첫시집 『죽편(竹篇) 』과 올해 『봄, 파르티잔』을 펴내며 그 오랜 기간의 '응축의 시학'으로 이번 박용래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어쩌다가 이 상이 나한테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박선생님의 깨끗하고 투명한 시와 삶의 울음에 늘 귀를 열어놓겠습니다."

철딱쉥이 해찰꾼 박시인이 가고 없어 그만큼 잇속으로만 삭막하게 돌아가는 문단이지만 서씨의 이번 수상에서는 오랜만에 술잔 그 자체가 오갈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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