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매입' 소리만 요란…신청수량 불과 63% 실천

중앙일보

입력

주가를 끌어 올리기 위해 자사주(自社株)를 사들이겠다고 공시해놓고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상장.등록기업이 늘고 있다.

특히 10월 이후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자 자사주를 공시한 수만큼 매입하지 않는 기업이 부쩍 증가했다. 주가를 더이상 떠받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코스닥시장 윤권택 공시팀장은 "기업의 주가부양의지를 확인하기 위해선 해당 기업의 자사주 매입 공시내용 뿐 아니라 시장측에서 공지하는 당일 매매신청내역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 9.11테러사건 이후 증시안정을 위해 자사주를 보다 수월하게 사들일 수 있는 길을 터줬었다. 그러나 기업들이 이를 시장교란에 활용할 여지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자사주 매입 특례제도'가 도입된 지난 9월21일 이후부터 11월말까지 자사주를 사겠다고 신청한 기업은 기아자동차 등 34개사로 신청수량이 9백43만주에 달했다.

이는 올 한해 전체 신청수량의 60%에 육박하는 수치다. 그러나 실제로 매매가 체결된 수량은 신청수량의 63%인 3백16만주에 그쳤다.

코스닥의 경우 취득실적이 더욱 저조하다. 같은 기간 자사주 취득을 신청한 코스닥 기업은 34개사로 이전 9개월동안의 기업수(28개사)보다 오히려 많았다.

그러나 신청건수와 신청주문량만 크게 늘어났을 뿐, 신청대비 취득 건수와 수량의 비율은 각각 67%와 40%에 그쳐, 80%를 넘어섰던 이전의 체결실적을 크게 밑돌았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자사주취득 특례제도가 매수호가의 제한을 대폭 완화했기 때문. 그 이전엔 개장전 동시호가때 전날 종가와 이 가격의 5% 범위내에서 매수주문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제도 도입이후 장중에라도 시가와 가장 높은 매수호가 중에서 비싼 가격 밑으로만 매수주문을 내기만 하면 된다.

매매체결이 불가능하도록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으로 매수주문을 내더라도 자사주취득 신청으로 인정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실제 매수의사가 없는 기업이라도 이런 방식으로 신청수량만 채우면 자사주취득을 공시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재 자사주취득을 공시한 기업은 3개월 안에 신고된 취득예정주식수 만큼 매매신청을 내기만 하면 실제 체결여부와 상관없이 시장측의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거래소 관계자는"최근 증시가 활황을 보임에 따라 자사주취득을 공시한 기업들의 자기주식 매입의지가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며 "특례제도의 헛점을 이용해 공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오용석 조사역은 "의도적인 허수주문이라고 판단될 경우 불공정거래행위로 간주해 임원해임 권고나 유가증권 발행 제한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용석 기자 caf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