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주40시간 연장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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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허리띠를 졸라 매자'.

독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노동시간을 늘리자는 주장이 일고 있다. 현재 주당 평균 38시간의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늘려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그간 독일에서는 재계를 중심으로 노동시간을 늘리자는 주장이 간간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장기 침체에 빠진 독일 경제가 디플레 조짐까지 나타나는 등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나온 이번 노동시간 연장 주장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다.

독일 경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0.2%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며, 4백만명을 넘어선 실업자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노동시간 연장 논의에 불을 지핀 인물은 독일상공회의소(DIHK)의 루드비히 게오르크 브라운 회장. 그는 며칠 전 디 벨트지와의 회견에서 "모든 노동자가 향후 5년간 5백시간을 무보수로 일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주 40시간'처럼 경직된 노동시간제가 아니라 일이 많으면 일을 더 하는 탄력있는 노동시간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이어 독일 소매업중앙회(HDE) 헤르만 츠란첸 회장은 19일 빌트 암 존탁지와의 회견에서 "주 40시간제를 재도입하고 연간 휴가일수를 이틀 줄이자"고 제안했다.

독일중소기업협회 마리오 오호벤 회장도 "독일 경제가 더 이상 EU 최고의 임금과 최장의 휴가를 보장할 수 없다"며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휴가를 연간 3~4일 줄이자"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정치권으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다. 헬무트 콜 총리 시절 경제장관을 역임한 자민당의 귄터 렉스로트 의원은 "1년에 6주에 달하는 휴가를 조금 줄임으로써 실업자 수를 크게 줄일 수 있다"며 이에 찬성하고 나섰다.

기민당의 에크하르트 레베르크 의원과 기사당의 막스 슈트라우빙거 의원도 "독일의 현행 노동시간은 외국과 비교할 때 너무 짧다"며 "국제 경쟁력 회복을 위해 주 40시간으로 즉각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노동시간 연장 주장에 대해 금속노조(IG 메탈)의 클라우스 츠비켈 위원장은 "이는 노조에 대한 공개적 도발행위이자 향후 노사 협력을 해치는 폭탄"이라며 즉각 반대했다.

그러나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일자리를 잃는 것보다는 조금 더 일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어 이 문제는 계속 논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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