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거덜내는 병' 2위는 당뇨병, 1위는 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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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수원의 한 아파트에서 손순죽 할머니가 뇌경색을 앓고 있는 남편을 보살피고 있다. [강정현 기자]

5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광교신도시의 한 아파트. 16.5㎡(5평)쯤 되는 방에 할아버지가 반듯하게 누워 있다. 손순죽(75) 할머니의 남편 이모(79)씨다. 손씨는 능숙한 솜씨로 남편의 목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가래를 뽑아낸다. 이씨가 고통에 몸을 떨자 손씨가 손을 잡았다. 가래 뽑는 기계, 수액과 거즈, 의료용 가위, 핀셋 등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씨는 2004년 뇌경색(뇌혈관이 막힌 병)으로 쓰러졌지만 숨골 근처라서 수술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대소변을 받아내고 배에 구멍을 뚫어 튜브로 영양을 공급한다. 10년 동안 남편의 손발 노릇을 하다 보니 손씨도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진다.

 더 힘든 것은 의료비다. 약값·영양공급에 연간 200만원(보험 적용)이 든다. 가래 뽑는 데 쓰는 재료(카데타·식염수 등)와 소독용 거즈, 기저귀 등은 보험이 안 돼 연간 400만~500만원을 써야 한다. 장기요양보험 덕분에 요양보호사가 손씨의 손을 덜어주고 있는데, 다음 달부터 요양보호사 서비스 시간이 줄어들게 되는 점도 손씨를 힘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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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씨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4대 중증질환(암·심장병·뇌질환·희귀병) 100% 보장 공약에 기대를 걸고 있다. 2010년 정부가 뇌질환 환자 부담을 5%로 경감했지만 손씨의 남편은 수술을 한 게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받지 못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당선인의 공약을 시행하더라도 수술 환자만 지원한다는 원칙이 유지되면 손씨 가구는 지원 대상에서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손씨는 “10년간 치료·간병비로 3억원 이상 쓴 것 같다. 아파트를 팔고 자식의 도움을 받아 겨우 돈을 댔다”며 “우리 같은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4대 중증질환 외에도 돈이 많이 드는 질병이 수두룩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본인부담상한제와 산정특례 효율적 통합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연소득의 10% 이상을 의료비로 쓴 가구는 308만1794가구였다. 전체 가구(1493만8079가구)의 20.6%에 달한다. 건보연구원은 이를 ‘재난적 의료비’로 규정했다.

연구원은 또 308만 가구가 많은 돈을 쓴 질병 20가지를 골라냈다. 가장 많은 의료비를 쓴 질병은 척추가 휜 병, 강직성 척추염, 등 통증 등 척추질환(기타 배병증)이다. 당뇨·고혈압·관절염·치매·허리디스크 등도 진료비 지출이 많았다. 소득 하위 50% 계층은 정신분열증 치료에 돈을 많이 쓴 것(18위)으로 나타났다. 이런 질병들은 4대 중증질환에 속하지 않는다.

 의료비를 많이 쓴 20개 질병 중 4대 중증질환에 속하는 암은 폐·간·유방·위암인데, 새 정부가 100% 보장 공약을 이행하면 이들 환자는 혜택을 받게 된다. 하지만 뇌경색증·심장질환·뇌혈관질환·뇌출혈 등은 일부만 혜택을 볼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수술 환자만 부담을 5%로 줄이고 있는데 앞으로도 이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신부전증도 혈액투석·신장이식만 포함될 전망이다. 건보정책연구원 임승지 부연구위원은 “건강검진을 많이 하기 때문에 소득이 높을수록 암 진료비 부담이 높은 것으로 나왔는데, 4대 중증질환을 보장하면 중상위 계층이 상대적으로 혜택을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임 위원은 또 “4대 중증질환만 보장하겠다는 근거를 잘 모르겠다”며 “재난적 의료비를 유발하는 질병을 세세하게 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신성식 선임기자, 차상은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재난적 의료비=한 가구가 연소득의 10% 이상을 의료비로 쓰는 경우를 말한다. 2011년 기준으로 전체 1494만 가구 중 308만 가구가 연소득의 10% 이상을 의료비로 지출했다. 이 중 20% 이상 쓴 가구는 177만 가구며 40% 이상을 지출한 가구도 84만 가구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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