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대한민국사, 헌정사가 기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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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종섭
서울대 법대
법학대학원 교수

목천 독립기념관에는 독립 투쟁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주로 사건과 인물 이야기다. 일제가 이 땅에서 저지른 악독한 죄악상과 우리 선조의 처절하고 비장한 투쟁사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왜 3·1 독립선언 때 헌법을 제정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는지, 임시정부가 고난 속에서도 헌법을 다섯 차례나 개정하면서 해방 때까지 입헌정부를 고수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의미까지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우리 선조가 조선 땅이 일본 영토가 아니고, 조선인이 일본인이 아니라고 외치면서 맨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장렬하게 목숨을 바친 의미를 제대로 말해 주지도 못한다.

 국제법상 주권국가이려면 영토·주권·국민의 3요소를 온전히 갖추고 이를 규율하는 헌법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3·1 독립선언을 기화로 헌법을 제정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선포했다. 독립투쟁은 이를 실행한 목숨 건 싸움이었다. 전체를 모르면 “임시정부도 헌법을 가졌네요”라고 신기해할 뿐이다. 대한민국 독립사를 관통하는 눈을 가지지 못하면 이렇게 된다. 독립기념관도 박제된 박물관으로 전락한다. 독립운동사 연구가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한 결과다. 그러니 해방 후 대한민국의 건국과 임시정부의 연관성을 이해할 리 만무하다.

 서울 광화문 거리에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개관했다. 벌써 하루 관람객이 7000명을 넘어섰다. 박물관 수용능력의 2배를 넘는다. 비로소 내 나라 대한민국의 전체적 흐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고, 성공한 조국의 모습에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기 정체성도 알게 된다. 그렇지만 전시공간도 확충하고 내용도 더 보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사실을 더 많이 드러내야 하고 사용하는 개념과 용어도 더 정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 연구가 부족해 이를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국사편찬위원회가 정부 수립 65년 만에 『대한민국사』 10권을 발간하겠다고 한다.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물론 현대사 정리는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연관도 있기에 춘추필법으로 서술하기가 쉽지 않다. 그간에 근현대사를 두고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과장·축소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일부 연구자들까지 객관성을 상실하고 양편으로 갈라져 각기 자기 입맛대로 역사를 구성·해석하기 일쑤였다.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나 선전물 같았다. 어쩌면 각자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친일·헌정·독립운동·과거사·산업화·민주화 등에 관한 논란이 모두 그런 양상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직 대통령 기념관·기념공원을 만든들 이해 당사자들의 잔치에 불과하다.

 역사는 부문별 연구도 필요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사』를 편찬하면서 대한민국 헌정사의 기본 축을 먼저 세우지 않는다면 부분적인 사건을 기술해봐야 역사관을 상실한, 분절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아홉 차례의 헌법 개정을 거치는 동안 발생했던 수많은 사건은 헌정사의 전체 구조와 흐름을 알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헌정사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미약하다. 그러니 건국 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음에도 대통령이 바뀌고 헌법이 개정됐다고 ‘제6공화국’까지 번호를 붙여나가다 그제야 포기했다. 의미도 모르고 아무 데나 혁명이라는 말을 붙인다. 대권(大權)은 ‘군주의 권한’을 의미하는데도 민주공화국의 대통령 후보를 대권주자라고 쓴다. 제헌헌법이라는 말은 ‘헌법을 제정하는 헌법’이라는 뜻이어서 논리적 모순인데도 이를 그대로 쓰고 있다.

 헌정사를 제대로 정립하면 특정 사건이 자유·반공·독재·혁명·봉기·민주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도 자연히 밝혀진다. 진실을 숨기고 싸울 필요도 없다. 『대한민국사』 편찬, 이번에 제대로 해야 한다.

정 종 섭 서울대 법대·법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