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의 씁쓸한 변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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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호 31면

이태원에 오래 살았던 건 아니지만 지금 난 해밀턴 호텔 옆에 새로 생긴 화려한 3층짜리 커피숍에서 다음 약속시간을 기다리며 이 칼럼을 쓴다. 잠깐 주위를 둘러보니 이 큰 공간에서 나 빼곤 모두 한국인인 것 같다.

서울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태원은 지난 5년간 가장 많이 변한 곳이다. 예전에 밴드를 구성해 기타를 쳤을 때 가끔 이태원 바에서 연주했었다. 청중의 98%는 외국인이었고 가게에선 퀴퀴한 옛날 맥주 냄새가 났다. 가난한 우리는 공짜 술을 얻어 마셨다. 이태원은 어둡고 우중충했으며, 그게 바로 매력이었다. 영국식으로 말하자면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guilty pleasure)이라고나 할까.

그땐 한국인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한국인들은 “위험해. 미군들은 널 괴롭힐 거야!”라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나 방송인이자 이태원에서 여러 개의 식당을 운영하는 홍석천씨 덕분에 이곳은 눈 깜짝할 사이에 고급화됐다. 이태원은 강남처럼 변했다. 홍씨는 서울의 가장 유명한 지역의 모습을 확 바꿔버린 주인공이다. 그를 비롯한 다른 기업가들은 이태원의 개성을 주류 대중의 입맛에 맞게 바꿔버렸다. 그들의 고급 레스토랑 몇 곳은 홍씨가 말한 ‘골목문화 혁명’을 이뤘다. 뒷골목에서부터 건물 하나하나를 변화시켜 나가면서.

새로운 이태원은 이국적이고 고급스럽다. 젊은 여성들은 거부감 없이 이 문화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나는 최근 인기 있는 태국 음식점에 가는 걸 진심으로 좋아하는 한국 남성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물론 여자친구가 그곳에 가자고 하면 별 도리가 없는 것 같지만.

이태원의 변화 중 가장 재미있는 사실은 외국인들이 떠난다는 것이다. 새 이태원은 너무 비싸다. 만약 새로 생긴 근사한 술집에서 수입맥주 한 병을 1만원에 판다면 그들의 고향에서는 그 반값에 그 맥주를 마실 수 있다. 그래서 옛 모습을 간직한 이태원으로 새롭게 조명되는 곳이 경리단길이다. 이태원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소박한 조각피자 가게와 생맥주 바들이 있는 거리가 뜨고 있다.

경리단길 건너편은 해방촌이다. 이태원 거주 외국인에게도 낯설게 느껴졌던 외국인 거주지다. 사람들은 “너 해방촌에 사는 건 아니지?”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 외딴 언덕도 요즘엔 작은 카페들이 모여든 인기지역(hot place)으로 부상하고 있다.

경리단과 해방촌 모두 아직은 한국 가게가 많다. 하지만 나는 내가 예전에 드나들던 퀴퀴한 냄새가 나던 록클럽처럼 그 가게들이 얼마나 살아남을지 의심스럽다. 정겨운 가게들은 항상 고급화되면서 옛 모습을 잃어갔다.

홍대 앞 거리의 상징이자 30년 넘게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았던 리치몬드 제과점의 경우도 비슷하다. 홍대의 젊은 문화 권력 덕분에 그곳 임대료는 경이적인 수준으로 올라 이 제과점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다. 슬프게도 이제 그곳은 프랜차이즈 카페로 대체될 것이다. 옛 홍대 주민들이 폭발적 인구 증가를 통탄하는 동안 리치몬드는 임대료가 싼 지역으로 옮겼다. 홍대는 원래 신촌의 비싼 임대료를 피해 온 사람들의 장소였는데 말이다. 홍대의 멋쟁이, 예술가들은 이제 문래동 같은 곳으로 이동한다. 공장지대였지만 더 이상 임대 수요가 없어 임대료가 싼 곳이다.

사람들은 종종 “세계 속에서 한국 이미지를 높이려면 뭘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나는 이미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이 다른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변화하는 걸 보고 싶지 않어서다. 그러나 내가 이번에 가볍게 한가지 감히 조언할 게 있다면 바로 이거다. “대통령 사면은 이제 그만.”



다니엘 튜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경제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대에서 MBA를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처음 방한했으며 2년 전부터 서울에서 영국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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