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여풍' 올해도 강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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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런던 중심가에 있는 커즌 소호 극장에서 개봉한 '고양이를 부탁해'의 현지 반응이 좋다는 소식이다.

커즌 소호는 문화 욕구가 강한 런던의 젊은이가 즐겨 찾는 곳. 2001년 국내 흥행에 실패해 '고양이 살리기' 운동까지 일어났던 영화의 화려한 부활이다. 젊은 여성 감독 정재은의 뚝심이 빚은 결과다.

'집으로…'의 이정향 감독은 어떤가. 지난해 한국영화는 그의 영화를 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치밀한 계획과 꼼꼼한 연출로 4백여만명의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밀애'의 변영주 등 이제 한국 여성감독은 '여성'이 아닌 '감독'에 방점이 찍힐 만큼 활발하게 뛰고 있다.

올해도 영화계 여풍(女風)은 계속된다. 그간 도전하지 않았던 스릴러나 스케일 있는 영화도 내놓을 태세다. 예컨대 김은숙 감독의 '빙우'는 한국 최초의 산악영화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성재.송승헌.김하늘 등 스타급이 포진됐다. 다음달 초엔 캐나다로 현지촬영을 떠난다.

이수연 감독이 찍고 있는 '사인용 식탁'은 전지현.박신양 톱스타를 기용한 미스터리 스릴러다. 그간 주로 무명 배우를 기용해 저예산 영화를 만들어왔던 여성 감독의 활동폭이 넓어진 증거다.

5월 개봉할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도 기대작이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최고의 화제를 모았다. 문성근.배종옥.박해일의 연기가 안정된 것은 물론 일상의 허위를 꿰뚫는 감독의 눈이 제법 매섭다. 제2의 홍상수 감독을 예감케 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은 친구 박경희 감독의 데뷔작 '미소'를 위해 프로듀서를 자청했다. 또 요즘 기분이 좋은 여성감독은 신인 김진아가 아닐까. 전작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가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됐고, 신작 '그 집 앞'도 5월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미국 연예잡지 살롱은 할리우드 여성감독의 약세를 특집으로 다뤘다. 미국 감독협회에 등록된 여성감독의 비율이 4%에 그친 반면 상원의원의 여성 비율은 9%라는 통계를 내놓았다. 올해로 75회를 맞는 아카데미 역사에서 감독상 후보에 오른 여성은 단 두 명에 그쳤다. 다른 어느 분야보다 할리우드가 보수적인 것이다.

충무로 사정도 할리우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도 많은 여성 인력은 기획.홍보.마케팅 분야에 몰려 있다. 양.질 모두 여성감독의 성장세가 두드러질 올 한해, 여성감독의 바쁜 발걸음이 영화계 지형도에 어떤 변화를 몰고올지…. 제2의 '집으로…'가 탄생할지…. 벌써부터 연말이 기다려진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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