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공룡 이케아의 고민 … 87세 창업자 ‘70년 황제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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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IKEA) 창업주 잉그바르 캄프라드(87)의 모습. 그는 17세인 1943년 회사를 설립해 평생 이케아 왕국을 이끌어왔다. [사진 인터이케아시스템스]

세계 최대 가구회사인 스웨덴의 이케아(IKEA)가 경영권 승계 시점이 다가오면서 리더십을 둘러싼 파열음을 내고 있다. 70년 전통의 이케아는 창업주이자 이사회 고문인 잉그바르 캄프라드(87)가 여전히 회사의 중요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은 상태다. 세 명의 자식 중 한 명에게 경영권을 넘겨줄지, 아니면 전문경영인에게 맡길지 오리무중이다.

 만약 캄프라드가 갑자기 사망하기라도 한다면 회사가 한바탕 경영권 싸움에 휘말릴 수도 있다. 실제 그와 현 경영진 사이에는 최근 회사 성장 전략을 놓고 견해 차이가 노출됐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30일 보도했다. 이케아의 최고경영자(CEO)인 마이클 올슨은 지난주 FT와의 인터뷰에서 “신규 매장 오픈 속도를 두 배로 올려 연간 11개에서 20~25개 수준으로 목표를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더 공격적인 경영을 하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다음 날 캄프라드는 스웨덴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이사회 의장에게 전화해 어떻게 그런 목표치가 가능한지 따져 물었다”며 “신규 매장의 수는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은 이를 창업주와 전문경영인의 충돌로 부각시켰다. 그러자 이케아 측은 “미디어 때문에 벌어진 오해”라며 “경영진과 이사회는 매년 10% 매출 성장이라는 공통목표에 충실하다”고 진화에 나섰다.

 캄프라드는 1943년, 17세의 나이에 이케아를 설립한 뒤 70년간 회사를 이끌어왔다. 그는 펜·지갑·액자 등 잡화류의 우편판매로 시작해 5년 뒤 가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저렴한 가격과 실용성 있는 디자인’이란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 이케아를 매출 276억 유로(약 40조원)에 약 14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세계 최대 가구회사로 키웠다. 98년에는 중국에 진출했고 한국에도 2014년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1호 점을 열 계획이다.

 이 같은 성공에는 창업주로서의 카리스마도 크게 작용했다. 캄프라드의 전 비서로 『이케아에 관한 진실』을 쓴 요한 스테네보는 “캄프라드는 영리할 정도로 자신이 개입해야 할 때를 안다. 결정의 순간에는 언제나 그가 직접 나서 사업 전략을 바로잡았다”고 회고했다. 스테네보는 “캄프라드가 말한 것을 잘 해석하고 전달해야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며 “이케아에서 결정을 하는 사람은 캄프라드 단 한 사람뿐이었다”고 그의 제왕적 지위를 묘사했다.

 문제는 그가 연로했음에도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2년 전 부인을 잃었고 자신도 심장 질환을 앓고 있다. 페터(49), 요나스(47), 마티아스(43) 등 세 아들은 모두 이사회 멤버로 활동 중이지만, 누가 경영권을 넘겨받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비상장 회사인 이케아는 현재 공식적으로는 네덜란드에 등록된 공익재단 스티흐팅 잉카재단의 소유다. 이 재단이 이케아 그룹의 지주회사인 잉카홀딩을 지배하고 있다. 이케아의 상표권, 제품 디자인 등은 인터이케아시스템스라는 별도 회사가 갖고 있다. 이런 복잡한 지배구조는 가족기업인 이케아가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상속세 등으로부터 회사를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다.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논란이 일자 잉카홀딩의 괴란 그로스코프 회장은 “이케아는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회사가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케아 안팎의 시선은 여전히 불안하다. FT는 이케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현 경영진과 이사회는 계속해서 창업주의 영향력을 줄이려 노력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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