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루어 내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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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립 국민학교에도 학구제를 실시하고, 입학시험을 없애기로 차관회의에서 정한 모양이다. 워낙 의무교육시설을 보충하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니, 사리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처사라고 체념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히 될까.
차별보다는 평등이 좋고, 기회는 고르게 만인에게 나누어준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기도 하다. 풍족한 자원과 기회를 골고루 나눠서 전체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면 문제없다. 고루 어올려 주기만 하면 좋다. 그러나 원래가 부족한 밑천을 산산조각을 내서 나누어 보려다간 숭고한 이상에도 불구하고 전체 수준은 땅에 떨어지고 만다. 고르는 것까지는 좋은데, 고루어 내리는 결과가 되기 쉽다.
사립 국민학교는 그 시초부터 말썽이 그치질 않았다. 의무교육의 보완이란 취지는 온데간데가 없고, 화사한 제복과 「스쿨·버스」와 「비프·스테이크」도시락 등이 상징하는 귀족화 경향을 과시해 왔다. 나라 아동의 절대 다대수가 교실과 교사부족으로 고생하는 판에, 극소수의 어린아이들이 특권의 자승과도 같은 처지를 즐긴다는 것이 언짢은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만일 가능하다면 모든 어린이에게 사립교가 베푸는 것과 같은 복된 배움터가 주어 져야 옳지 않은가. 사립교가 지나친 속물성과 배금주의를 청산하기만 하면 의무교육이 하루속히 뒤쫓아 가야할 목표의 구실을 하는 것이다. 학구제와 무시험입학을 사립교에도 강요하면 동고동락의 원칙은 살지 모르지만, 초등교육이 지향할 목표가 무산해 버리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나누어 가질 약은 영영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동고·동고하는 파탄이 오지 않을까. 이상과 현실이란 끝내 합치할 수 없는 것.「완전」이니 「절대」니 「완성」이니 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무가망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남은 길은 결국 그 두 가지의 슬기로운 타협을 모색하는 것이다. 평등이란 이상 때문에 고루어 내려선 안 된다. 평등의 이상을 살리는 길은 고루어 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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