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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10)전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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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차단기는 아직도 원색
철마는 미명에 길을 잃었다. 어느 6·25의 갈림길에서 북을 향한 기적은 마지막 새벽을 울었었다. 철길은 두 갈래 남과 북-. 차단기는 아직도 노랑·파랑 정청같은 원색을 번득이고 서있지만 철마는 말이 없다. 포효를 잊고 자갈을 물린 화통은 기관총탄에 벌집처럼 뚫어져 있다. 오고가도 못함도 서러운데 담쟁이덩굴이 기관차를 꽁꽁 묶어버렸다. 화부 간에는 암 굴둑새가 둥지를 틀어놓고 외출 중. 모진 풍상이 핥아낸 철갑이 뙤약볕에 달아올라 끈적한 「하이에나」 표도 기관차는 어쩌지 못 한채 그 미명의 증인으로 남겼는가. 하지만 숲은 살쪄도 난파한 철마는 나날이 여위어갔다.
○…16년전 「피의 일요일」
16년 전의 그날, 김용식 상사는 보병 1사단13연대 38선 경비소대장이었다. 김 상사는 마침 휴가 중-. 이리떼는 그날 새벽에 밀렸다. 의정부에서, 고량포에서, 개성에서, 옹진에서 주저항선은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버렸다. 휴일의 꿈은 벼락을 맞고 산산조각이 났다. 『휴가장병은 전원 귀대하라』-김 상사가 가다듬어본 전열은 기가 막혔다. 외박이 전 병력의 3분의 1. 연대병력을 싹싹 긁어모았어야 1,461명뿐이었다. 주저항선에 붙은 건 8백명 정도. 김 상사가 허겁지겁 달려왔을 때는 전차사단의 지원을 받은 적 6사단이 개성을 뚫고 장단으로 닥치기 시작했다. 문산철교를 건너 서울로 밀릴 기세였다. 김 상사는 38식 장총으로 적 「탱크」앞에서 나섰다. 허사였다. 2.36「인치」 대전차포의 위력은 붉은 「탱크」의 「캐터필러」 밑에 짓 말려버렸다.
육군사관학교, 교도대학, 후보생대대를 마구 쓸어넣어 봤지만 「파죽」의 적세는 어쩌지 못했다. 첫날 전투에서 아군피해는 전사 85명, 실종 1천29명-. 김 상사는 수류탄을 거머쥐었지만 육탄이나 다름없었다. 등에 화약을 진 6명과 함께 괴물같이 굴러오는 적전차에 뛰어들었다. 그제야 「탱크」는 불기둥을 뿜으며 7대중 4대가 박살나 버렸다. 자유를 위한 육탄용사들은 미련 없이 죽어갔다. 「홍모」같이-. 「초개」같이-. 얼마나 많은 김 상사와 이 하사가 죽어갔는지 모른다.
그로부터 16년-. 신동길 소위(23·대구)는 그날 그 전선을 물려받아 수색소대장이다. 6·25때는 병정놀이도 못해봤을 나이의 소대장을 따라 수색대원들은 비무장 지대를 수색하고 있다. 피의 전설을, 다만 「전설」로 들어봤을 뿐인 세대가 언제부턴가 이 전선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군은 군사분계선을 따라 경계중인 괴뢰경비병과 마름쇠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노려보기도 한다. 그들은 국군을 비로소 보았고 우리 병사들도 북괴군을 처음 보았다.
우리 병사들은 홀대바지에 주름을 다려 입고 「헬멧」을 쓴 모습이 산뜻했지만 저들은 축 늘어진 봉 바지에 빵 모자를 눌러쓴 모습이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이방처럼 느껴지는 완충지대-. 그것은 국경보다 더한 분단선이었다.
○…갖가지 사연 고지명명
완충지대 안에 갇혀버린 경의선 장단역-. 봄엔 개나리·철쭉이 강안석벽을 덮어 단청한 병풍 같다던 임진강 마루턱은 납골당이 돼버렸다. 전운을 따라 밀리고 밀치면서 숱한 젊은이들이 피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래서 이 지역은 민족의 「네크로포리스」-대봉분-. 「저격능선」 「단장의 능선」 「백마고지」-.
어느 고지는 쌍방의 포화에 산꼭대기가 어찌나 녹아 내렸던지 「아이스크림」 고지라 했다. 육체파 여우의 가슴패기 같다하여 「제인·랏셀」 고지도 있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북으로 2K 떨어져 북방한계선, 남으로 2K 떨어진 곳에 남방한계선. 영농한계선.
시꺼멓게 죽음 같은 침묵에 빠져있는 쌍방의 진지엔 GP와 OP와 CP. 그 속에 도사린 호와 영구진지와 교통호-. 묶이고 조인 조국의 허리는 이미 감각을 잃었다. 끝없이 퍼진 지뢰지대엔 안전소로만을 남기고 온통 폭발물을 파묻고 있다.
○…뭇 야생동물들의 낙원
비무장지대는 인간을 추방해버렸다. 무법자는 야수들-. 잡초속엔 여우굴. 너구리며 산돼지들의 낙원이 되어버렸다. 피를 뿌리고도 못 찾는 비싼 자유를 그들 무법자들은 한껏 누리고 있다.
백55「마일」 『죽음의 회랑』을 누벼 한강 하구에서 한데 어울리는 임진강, 한탄강, 문산천-. 16년동안 그물질을 못한 그 속엔 숭어떼들이 득실득실-. 배를 팔고 땅을 일구는 옛 어부들은 『고기반 물반』이라면서 입맛을 다셨다-.
장단역 비무장지대서 <글 최규장·사진 윤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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