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클레지오를 칭찬하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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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는 대가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로 오르내리는 그의 문학적 성취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타인과 타문화를 대하는 그의 성실함이 이런 평가를 내리기에 충분하다.

지난달 14일부터 9일간 한국을 첫 방문한 그가 이곳에서의 감흥을 적은 장시(長詩) '운주사(雲住寺) , 가을비'를 보내왔다. 어찌보면 그저 시 한 수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는 프랑스로 귀국한 바로 다음날 전남 화순 운주사 천불천탑의 풍광을 위시한 한국 정취를 시에 담아냈다.

나름의 시각으로 이 곳 산사의 고즈넉함과 도심의 빠른 속도감을 대비해 표현하기도 했다.

사실 그는 방문 기간에도 네 번의 강연을 모두 다른 주제로 잡았으며, 현재 집필중인 소설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낭독.공개하기도 했다. 게다가 한국 방문 소감을 묻는 질문에 "평소 이청준씨의 소설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의 소설에 나오는 서울길이 어디인지가 제일 궁금하다"고 답했다.

그를 초청한 대산문화재단의 관계자는 "몇 해 전 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초청했을 때 너댓번의 강연 내용이 모두 똑같은데다 즉흥적 내용 위주여서 적잖이 실망했었다"며 "클레지오의 경우 그의 준비 태도에 우리도 놀랐다"고 설명한다.

클레지오의 이번 경우를 두고 칭찬을 하는 것은 사실 서구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문화 교류란 측면에서 보자면 방문자나 초청자나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문화를 전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물론 클레지오의 성실함은 이런 전제를 떠나서도 칭찬받을 만하다.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이제 한국 사회도 세계적 인물의 한국 방문 성사 여부, 즉 "아무개가 한국에 온다"로만 만족할 필요는 없음을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그저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기 위한 상업적 목적의 방문일 경우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해주면 그만이고, 특급 호텔을 잡아주면서까지 초청한 사람의 경우 그에 걸맞는 의무를 요구할 문화적 자존심도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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