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어느 쪽이 야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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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의 기자들」이라는 제명아래 화보가 실렸다. 그것은 일본의 중앙공론(7월호)-우리 귀에도 별로 낯설지 않는 저명한 월간지이다. 그런데 그 화보 첫 「페이지」에는 「보도」라고 쓴 완장을 찬 한국기자들이 길가에 서서 오줌을 누고 있는 광경이다. 탓하기가 도리어 부끄러운 망측한 사진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들은 하고많은 것 가운데 하필 소변보는 한국기자의 그 장면을 소개해야만 했던가? 그 사진이 사실 그대로를 찍은 것이라 하자. 그러나 그 기사에도 실려있듯 그것이 변소가 없는 일선지역의 야외였고 여성들이나 일반인들이 없는 신문기자들만이 취재를 하러간 자리였다. 일본기자들 같으면 그런 경우, 어떤 방식으로 소변을 보는가? 점잖게 「인스탄트·변소」라도 세울 것인가? 「카메라」옆에 변기라도 메고 다니다가 용변을 하는가? 아니면 일인기자들은 개들처럼 다리 한쪽이라도 들고 누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아 이상했던 것일까?
그들도 별수 없이 그런 자리, 그런 경우라면 그와 꼭 같은 광경을 벌였을 일이다. 「보리와 군대」라는 일인들의 소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황군을 자처하는 그들이 보리밭에 죽 늘어서서 방변을 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던가! 아니, 아니, 다른 것을 더 따지지 말자. 야외「피크닉」이나 자동차 여행을 할 때, 서양사람들은 「잠깐 산책하자」「달을 보러 가자」라는 은어를 쓴다. 그것을 바로 용변을 하러 간다는 뜻이고, 신사나 숙녀나 야외에서는 별수 없이 「샹제리제」거리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방뇨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아와 품위를 자랑하던 그 귀부인들도 「베르사이유」궁에서 「가든·파티」를 하다 용변을 해야할 경우엔 모두 숲으로 들어갔다는 것이 공식적 기록에도 나와있다.
그래 야외의 산악 길에서 서서 용변을 보는 것이 한국기자만의 모습이란 말인가? 문제는 서서 소변을 보는 한국기자들이 비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그런 장면을 찍어 보도를 한 일인기자가 바로 야만적이라는 사실이다. 두 번 묻건대 일인기자 같으면 변소 없는 벌판에서 용변을 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하는가? 그것은 일인들, 아니 인간의 공통된 광경일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꼴을 찍어 한국기자의 소개화보에 실렸는가? 답변하라, 문화인답게 답변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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