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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의 예술이 있는 겨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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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하나의 허구다. 겨울은 전방고지에 첫 눈이 내렸다는 보도, 코트깃을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지하도를 내려가는 사람들의 사진, 구세군 냄비가 등장했다는 뉴스, 쇼핑가의 가짜 산타클로스와 함께 온다.

어쩌면 우리는 실제의 겨울을 살지 아니하고 겨울이라 명명된 어떤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겨울은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처럼 온다. 가슴에 거울의 파편과 얼음 조각이 박힌 아이를 유괴하여 썰매에 태우고는 성밖으로 달아난다는, 눈부시게 아름다워 차마 맨눈으로는 쳐다볼 수도 없다는 눈의 여왕.

내 어린 날의 어느 겨울은 그녀의 것이었다. 그녀가 당도하는 순간 현실의 겨울은 허구의 겨울에 그 자리를 내주고 퇴각하였다. 지금 와 돌아보건대 그녀는 공포와 매혹이라는 겨울의 야누스적 양면을 멋지게 대변하는 존재였다(눈의 아름다움에 눈멀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기꺼이 목숨을 내놓고 말았는가!)

찰스 디킨스는 겨울이라는 이 야누스적 세계에다 자선이라는 새로운 얼굴을 선사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지독한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을 찾아온 유령들은 자본주의의 혹독한 겨울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캐럴』의 저자였던 1843년의 찰스 디킨스는 그해 시월, 인생의 가장 혹독한 시기를 견뎌내고 있었다. 바로 이 역설(!) . 겨울만큼 역설을 좋아하는 계절이 없다. 매서운 추위는 뜨거운 사랑과 자주 짝을 이룬다.

영화 '러브레터'는 옛 연인의 장례식 날, 눈밭에 드러누운 여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의 하얀 입김으로부터 시작하여 설원에서의 외침("잘 지내고 계십니까?") 으로 절정에 다다른다.

영화 '러브 스토리'의 배경이 겨울인 것도 우연만은 아니다. 가난한 학생 부부, 여자는 병들고 남자는 남겨진다. 그럴 때, 보스턴의 겨울은 기꺼이 그 유명한 비극의 증인이 되어준다.

우리가 살아낸 어느 겨울에는 메이드 인 러시아의 딱지가 붙어 있었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인간의 어리석음과 전쟁의 끔찍함을 드러내기 위해 러시아의 겨울을 징발했다. 그들, 러시아의 어두운 영혼들은 한계상황에 처한 인간조건과 특정 계절을 결부시켜왔다. 물론 그것은 유리 지바고와 라라의 겨울이었고 또한 안나 카레니나의 겨울이었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지만 겨울은 허구다. 허구가 현실이 되고 신화가 생활이 되어버린 계절, 그것이 겨울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바고의 겨울을 살기 위해 기차에 오르고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첫눈이 내리는 날 이루어질 극적인 재회를 고대하며 긴긴 기다림을 감내하는가.

겨울이라는 계절에 덧씌워진 이 환상과 기대 때문에, 그 환상과 기대가 우리 욕망의 실현을 영원히 유예시키는 까닭에 우리의 영혼은 여전히 춥다. 난방이 완비된 빌딩과 지하철, 아파트 사이를 오가면서도 옷깃을 여며야 한다.

그렇다. 때로 우리는 허구가 아니라 위로를 원한다. 위로를 원하는 영혼에게는 음악이 제격이다. 12월 내내 빚쟁이처럼 거리를 점령한 요란한 캐럴에 잠시 귀를 닫고 내면으로 깊이 내려가고 싶을 때, 그러나 너무 칙칙해지고 싶지는 않을 때 고요히 문을 닫아 걸고 슈베르트를 듣는 건 어떠할까.

알프레드 브렌델이 연주한 '즉흥곡'이나 피셔 디스카우가 부른 '겨울나그네'가 흐르는 겨울은 따스하다.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연상시키는 캐나다 출신의 재즈 보컬 다이애나 크롤도 허구의 계절, 겨울에는 제격이다. 그녀는 얼음으로 깎아놓은 듯한 표정 아래 뜨거운 위안을 감춰두었다.

마치 어느 고요한 통나무집에서 피아노만을 동무한 채 속살거리듯 노래하는 엘라 피츠제럴드의 '퓨어 엘라'도 겨울이면 집어들게 되는 앨범이다.

그래도 겨울의 기세가 등등하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허구에는 허구로 맞서는 것도 좋은 방법일 터. 그래야 이성의 얼음조각이 심장에 박혀 눈의 여왕에게 끌려가는 허황한 일을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나는, 이 겨울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한 사람의 작가를 찾아 서점가를 뒤진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진짜 겨울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지만 두렵지는 않다. 오라, 겨울이여. 내 너를 어찌 반기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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