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실패한 병원들 짐 싸서 찾는 도시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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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해 문을 열고 닫은 병원 수는 얼마나 될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결과를 내 놨다. 전국적으로 6446개의 병·의원이 생겼고 5583개의 병의원이 사라졌다. 하지만 편차가 있었다. 어떤 과목의 병원은 폐업률이 사상 최대인 반면 어떤 과목은 승승장구했다. 이 같은 현상은 지역별로도 차이가 있었다. 작년 개폐업 현황에 따른 지난해 울고 웃은 병원들을 정리해봤다.

#산부인과·소아과·비뇨기과 폐업 수 최대

과별로는 산부인과·소아과·비뇨기과의 폐업 수가 신규 개업 수 보다 많았다. 특히 산부인과가 높은 폐업률을 나타냈다. 지난해 새로 문을 연 산부인과는 전국 56곳이었지만 폐업한 곳은 97곳이었다. 2005년만 해도 신규 140건, 폐업 132건으로 신규 개업건수가 더 높았었던 것에 비하면 높은 폐업률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몇 년 전부터 계속 어려웠지만 작년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며 “수가가 워낙 낮은데다 포괄수가제 도입 등으로 수입이 줄어 운영 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산부인과의 폐업률은 앞으로도 더 가파르게 높아질 것이라는 게 김 이사의 설명이다.

소아과도 신규 개업 수 보다 폐업 수가 더 많았다. 대한소아과학회 손용규 원장(서울지부 총무)는 “서울만 해도 매년 전체 인구가 1%씩 줄고, 어린이는 10%씩 감소한다. 폐업률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아과의 낮은 수가 보전도 문제다.

손 원장은 “몇 년 전부터 어린이 한 명 진료 하는 데 드는 수가를 명 당 100~200원씩 올려줬는데 생색내기였을 뿐이다. 하루 50명 진료를 본다 해도 5만~10만원 더 번다. 병원 경영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소아과는 비급여로 돌릴 수 있는 처치 과목도 거의 없다. 보험 수가대로 받아야 하는데, 임대료가 계속 높아지는 상황에선 폐업률이 높을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있다. 김재연 법제이사는 “소아과는 원래 좋은 목을 찾아서 계속 이동하게 돼 있다”며 “신도시가 새로 생길 때는 주거비가 저렴해서 신혼부부가 많이 모여들지만 도시가 점점 성장하면서 집 값이 뛰고, 소아청소년기 자녀를 둔 가구의 비율도 점점 줄어든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신혼부부가 많이 사는 신도시 또는 주공아파트 등이 들어서는 곳을 찾아 소아과를 이전한다. 소아과는 전통적으로 폐업률도 높고 신규 개원도 높다는 게 김 이사의 설명이다.

비뇨기과도 작년 폐업이 개원보다 많았다. 비뇨기과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됐다. 하지만 폐업률은 작년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형래 대한전립선학회 홍보이사는 높은 폐업률의 이유로 영역침범을 들었다. 그나마 돈이 되는 요실금 등의 수술은 산부인과에서 가져가고, 음경확대 수술도 포화가 된 상태다. 비아그라 등의 약물 사용 증가로 확대술의 수요도 많이 줄었다. 또 항생제 등의 약이 좋아져서 염증이나 성병 같은 질병도 크게 줄었다는 것. 그나마 비아그라 약 처방도 내과나 가정의학과에서 처방 받는 경우가 많다.

이형래 이사는 “암담한 수준이다. 하지만 앞으로 전립선암, 방광암, 노인성비뇨기질환 등은 많아질 수밖에 없으니 개원 비뇨기과 전문의들은 수술적 치료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수련하면 살 길이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밖에 개업 수 보다 폐업 수가 높은 나머지 세 과목은 영상의학과·재활의학과·가정의학과였다. 하지만 폐업 이유는 달랐다. 전문가들은 영상의학과와 재활의학과가 폐업률이 높은 것은 오히려 이들 두 과 전공의들의 몸 값이 아직은 높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두 과의 공통점이라면 개원 초기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 내과계열과는 달리 각종 첨단 영상장비와 재활기구, 그리고 비교적 넓은 면적의 병원이 필요하다. 재활의학과는 보조인력에 쓰이는 인건비도 많이 든다. 때문에 한 사람이 개원하기에는 초기 투자 비용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병원경영연구원 이용균 실장은 “수도권의 부동산비, 임대료는 자꾸 올라가고 인건비가 올라가는 시기에 1인이 각각 개원하는 것 보다 자신의 병원을 접고 큰 병원으로 들어가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 현재 영상의학과와 재활의학과의 몸 값은 최고치를 찍고 있고 있는 상태라 개원을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정의학과는 조금 다르다. 영상의학과와 재활의학과가 비교우위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면, 가정의학과는 비교우위의 경쟁력이 없다. 그래서 개업을 했다가 폐업하고 다시 개업하는 절차를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용균 실장은 “가정의학과에서 개원을 하고 있다가도 옆에 비슷한 기능을 가진 내과 또는 소아과 등이 들어오면 눈물을 머금고 짐을 싸서 다른 미개척 도시로 이전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마취통증의학과는 폐업이 더 많지는 않지만 폐업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 또한 임대료 등의 개업 환경이 어려워서라는 지적이다. 몇 년 전부터 꼬리뼈신경술 등 마취통증의학 전문의 비술척추치료 병원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기존 수술전문 척추전문 병원들이 최근 비수술치료로 돌아서면서 마취통증의학과의 경쟁력이 많이 상실됐다. 때문에 폐업률은 점점 더 늘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피부과는 폐업률이 낮은 유일한 과였다. 이용균 실장은 “거의 전 진료과목이 비보험으로 적용되는 몇 안 되는 과인데다가 피부를 다루는 가정의학과나 내과 등에 비해 비교우위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서 폐업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며 “경영은 예전보다야 힘들어질 수 있어도 임대료를 못 내거나 하는 정도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임대료 높아져 폐업율 높아…신도시 찾아 개업

지역별로는 서울의 폐업율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용균 실장은 “이제 서울에는 작은 의원이나 병원이 더 이상 개업할 여지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서울에 개업하는 병원들은 대부분 대학병원의 브랜치(branch)이거나 우리들병원·튼튼병원 같은 전문병원의 분점 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서울에 새로 개업하는 병원이 있으면 간 큰 병원이라고들 한다”고 말했다.

예전엔 서울 변두리 지역도 신규 병원 후보지로 괜찮았지만 지금은 서울 변두리지역까지 빅5병원이 흡수하고 있다. 오히려 화성 동탄, 죽전과 같은 경기도 신도시 쪽에 새로운 인구 집단이 형성되고 있어 그쪽으로 신규 병원들이 눈을 돌리고 있다.

부산도 폐업률이 높았다. 사상 최고의 나타냈다. 이용균 실장은 “지금 부산은 인구의 경제력이 양분화 돼 있다. 전체적으로는 생산재 사업이 줄고 문화도시로 바뀌고 있어 전체적인 소비 능력은 계속 감소한다. 일부 고소득층에서는 지식층이 많아 큰 병에 걸리면 서울로 간다. 서울은 중소병원들의 폐업이 높은 반면 부산은 대형병원들의 폐업률이 높다”고 말했다.

또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역시 사상 최대의 폐업율을 보였다. 그 중 대전 지역만 유일하게 폐업보다 신규 개원율이 높았다. 김재연 법제 이사는 “서울에서 잘나가다 실패한 중소병원들이 가장 많이 재기를 시도하는 곳이 바로 대전”이라며 “때문에 대전의 개업률이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서비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수익이 많이 나는 곳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균 실장은 “어떤 분야이든 S성장곡선을 그리는데, 우리 의료시장은 ‘진입, 성장, 성숙, 쇠퇴기’ 중 현재 쇠퇴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원래는 2014~2015년쯤으로 전망하고 있었는데 그 시기가 좀 더 빨리 다가온 것 같다”며 “우후죽순 생기던 병원들이 이제 폐업률이 극에 치달으면서 정리가 되고, 저 성장 안정화된 시기가 당분간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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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영 기자 jybae@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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