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예사롭지 않은 KAIST 미등록 사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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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호 02면

엘리트의 산실이라는 KAIST가 올해 신입생 모집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850명 정원에 등록 학생은 717명에 그쳤다. 84%의 등록률은 다른 대학의 합격자 발표 결과에 따라 더 떨어질 수도 있다. 한국과학기술원법에 따라 설립된 KAIST는 다른 대학보다 정원 운용이 탄력적이다. 그래서 스스로 정한 입학 정원보다 우수 학생이 몰리면 더 뽑고, 적을 땐 굳이 정원을 채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올해는 1971년 개교 이래 처음으로 추가 모집까지 했음에도 역대 최저의 등록률을 기록한 것이다.

일개 대학의 등록 상황을 심각하게 보는 것은 KAIST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서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이 대학은 대덕연구단지의 정부출연연구소, 기업연구소 등과 함께 ‘산학연’의 핵심 고리다. 그동안 과학기술계에 미친 공헌이 큰 데다,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 중 하나다. 짧은 역사에 이룬 성과는 가히 ‘신화’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고3 입시생에게 외면당하는 처지가 된 걸까.

원인을 KAIST 내부에서 찾는 사람이 많다. 서남표 총장의 개혁이 내부 구성원들에게 깊은 상처와 피로감을 줬고, 신입생들의 학교 선택에 악영향을 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서총장이 학생·교직원에게 많은 압박을 가하는 과정에서 불행히도 몇몇 학생이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있었다. 많은 교수·학생이 총장을 비난하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하지만 서 총장은 곧 물러나게 되며 다음 주 열릴 이사회에서 새총장을 뽑게 된다.

KAIST 미달 사태의 원인은 더 넓고 심각하게 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10여 년 전부터 심각한 이공계 기피 현상을 겪고 있다. 그나마 KAIST는 우수한 교수진과 수업의 질, 학교의 전통과 명성, 무료에 가까운 학비 덕에 타격을 덜 받은 것뿐이다. 이제 이공계 기피란 격랑이 KAIST까지 밀려온 것이다. 조짐은 KAIST 내부에도 나타났다. 2008년 이후 5년간 학사 졸업생 3502명 중 10.8%인 380명이 의학대학원과 로스쿨로 진학했다.

국비로 의사·변호사를 만든 셈이라고 따지는 건 나중 일이다. 시급한 건 이 나라의 미래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아낌없이 세금을 지원했던 젊은 두뇌들이 왜 연구실을 외면하는지, 그리고 더 이상 찾지 않는지 따져보는 일이다. 이공계 인재들이 앞날에 자신이 없어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이라면 문제다. 국가가 과학자와 기술자의 앞날에 대한 확신과 동기를 주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합해 관장하는 미래창조과학부를 출범시켰다. 약칭이 미래부(部)다. 그 이름값을 할 첫 번째 과제가 눈앞에 놓여있다. 미래형 젊은 인재들에게 우선 ‘미래’를 되찾아주는 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해외에서 활약하던 우수 두뇌를 데려오기 위해 온 정성을 쏟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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