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40년 뒤 후손들에게도 ‘위기의 지구’를 물려줄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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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미래학자 요르겐 렌더스의 미래 예측은 암울하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보다 인간적으로 만들 부모 세대의 결단을 촉구한다. 매연이 나오는 중국의 공장 굴뚝과 주변의 자연 풍경이 대비를 이룬다. [중앙포토]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다는 것은 눈을 감고 달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최근 각각 거시적·미시적 관점에서 미래를 예측한 책이 나란히 나왔다.

『더 나은 미래는 쉽게 오지 않는다』와 『어모털리티』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 결국 오늘에 대한 충실한 삶을 힘주어 말한다.

더 나은 미래는
쉽게 오지 않는다
요르겐 렌더스 지음
김태훈 옮김, 생각연구소
552쪽, 2만3000원

1998년, 내가 편집동인으로 참여하고 있던 문화잡지 ‘이다’는 2003년호를 발간했다.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비관과 희망이 쏟아져 나와 시끄럽던 때였다. 탱화와 산신도를 모티브로 한 ‘2003-2004 파리 추동 컬렉션’ 리뷰와 부상에서 회복한 강철 선수가 2002년 월드컵에서 대활약을 펼치는 이야기가 담겼다.

 실업자가 넘쳐나고 여수에서는 전염성 바이러스 때문에 생긴 자기면역질환이 발생했다. 여러 분야의 젊은 전문가들의 예측을 골라 실었지만 그대로 들어맞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해프닝으로 끝난 밀레니엄 버그를 넘어서는 어떤 심각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맞았다.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났지만 사람들은 또 다른 천 년을 기다리면서 지루하게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5년 후는 지금과 다름이 없어 그곳을 내다보는 것으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깨닫기 어렵다. 그렇다고 너무 먼 미래를 내다보는 것도 별로 결실이 없다.

 최근 몇 년간, 1000년 단위의 미래를 가늠하는 책이나 인간 이후의 지구를 상상해보는 책이 여럿 나왔다. 좀더 실천적인 의미를 찾아내고자 이 책들을 소설로 쓰지 않고 부분적인 증거와 상상을 조합했을 터인데 그러기엔 다루는 규모가 너무 크다.

 예측의 범위를 40년으로 조정하면 우리는 그 예측으로부터 어떤 실천적 지침을 얻을 수 있을까. 로마클럽보고서 『성장의 한계』를 집필하는데 참여했던 요르겐 렌더스가 쓴 『더 나은 미래는 쉽게 오지 않는다』는 그런 40년 후를 예측한다.

 1972년 출간된 『성장의 한계』는 2100년까지 진행될 세상의 추이를 담아 지구를 초과 사용해서 붕괴가 올 수 있다는 이야기로 세상에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충격은 충격을 줄이려는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지구와 환경을 지켜야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당위적인 이야기들은 단순한 수사로만 사용됐다.

 지금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세계적인 환경관리는 이해의 충돌 속에서 공염불이 된지 오래. 안타깝게도 산호초와 원시림은 사라져간다. 사람 때문에 지구가 바뀌고 있다. 바뀐 지구에서 사람들은 살기 쉽지 않다.

 많은 전문가와 자료를 동원한 이 책의 예측에는 반전이 없다. 성장은 정체되고 극심한 기후 변화에 시달린다. 세대간의 갈등, 빈부의 격차, 양극화,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갈등은 점점 더 커져간다. 그 위에 자연 파괴의 대가인 재앙이 덮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40년 후에 대한 예측을 보면서 그것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손으로 직접 꼽을 수 있다.

 이 책은 재미있다. 사실과 상상을 적당히 엮어 쓴 팩션처럼, 혹은 추리 소설처럼 사실을 모으고 그것에 근거를 두고 추론을 해 나가는 방식이 흥미진진하다. 더구나 그 추론의 결과가,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부터 태어날 아이들이 살아야 할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긴장감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재미없다. 랜더스 스스로 지금의 패러다임으로 미래의 역사를 써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벗어나지 못해서 예측이 너무 평범하다. 그것이 설혹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적당히 암울한 예측 정도로 랜더스가 노렸던 효과를 보기에 부족하다.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일어났다고 하고 미래의 전개를 바꾸어 버리면 광범위한 자료와 그에 바탕한 진지한 추론의 무게가 가벼워지기 때문에 그랬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겪지 않고는 행동을 교정할 수 없는, 개구장이 소년과 같은 인류에게 그의 충고는 반복되는 엄마의 잔소리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랜더스는 행동을 촉구하지만 이 책이 행동을 촉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사람들은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가 생기면 큰 일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체르노빌에 사고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것이 큰 문제라는 생각을 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체르노빌에 사고가 생겼어도 후쿠시마에 사고가 생기기 전까지 일본 사람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였을 따름이다. 가까운 나라에서 사고가 일어났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다른 나라 이야기다.

 올해 겨울이 춥고 그 추위가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서 북극의 제트기류가 찬 기운이 아래로 흐르는 것을 막지 못한 탓이라고 하지만 40년 전엔 이렇게 추운 적도 많았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추운 겨울을 겪기 전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오스트레일리아는 폭염과 산불로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날씨 예상 지도에 새 색깔이 추가 되었다. 지금까지 지도에는 검은색이 최고 온도인 48~50도를 표시했는데 52~54도까지 기온이 오르면서 50~52도를 표시하는 보라색, 52~54도를 표시하는 진분홍색을 정했다. 이것은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것이고 더워지는 지구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온도에 익숙해져야 하고 견딜 수 없다면 이전으로 되돌려 놓아야 하는 것이다.

 겪어보지 못한 어려움, 당장의 큰 고통이 없으면 집단 차원의 행동을 만들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한 41명의 글들이 아무런 노력 없이 시간이 흘렀을 때, 인류가 겪어야 할 고통을 보여준다. 하지만 개연성이 있다면 좀 더 큰 파국의 시나리오들이 포함되었으면 좋았을 뻔 했다.

 선정성에 호소하자는 것이 아니다. 『성장의 한계』에 반응하지 않은 인류를 행동으로 이끌 실마리, 혹은 기폭제로 이 책에 더해져야 할 것은 우리에게 닥칠 파국에 대한 상상이다. 얼토당토 않은 위협을 해서는 안되겠지만 국제적인 수준에서 미래를 위한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우리 스스로에게 내리는, 매서운 회초리가 필요하다.

주일우 과학평론가

●주일우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협동과정 석사.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동아시아 환경사). 문학과지성사 주간. 저서 『지식의 통섭』(공저), 역서 『다윈의 대답 4』 『신데렐라의 진실: 낳은 정과 기른 정은 다른가(다윈의 대답 5)』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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