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쌀 때 사 두자” 외화예금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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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두 자녀를 미국에 유학 보낸 김모(50)씨. 최근처럼 원화 가치가 올라갈 때마다 조금씩 달러를 사서 외화예금에 넣어둔다. 가격이 쌀 때 미리 사두면 나중에 달러 가치가 올라도 부담을 덜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씨는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달러 가치가 급등해 환전하면서 돈이 많이 들었다”며 “달러가 쌀 때 조금씩 사두면 이런 환율 변동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원화 강세 흐름이 이어지면서 환율이 재테크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발 빠른 투자자 사이에선 원-달러상장지수펀드(ETF), 달러선물처럼 원화 강세에 ‘베팅’하는 상품이 인기다. 하지만 좀 더 미래를 바라보고 이런 흐름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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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화예금 가입자가 대표적이다. 외화예금은 달러·엔 등 외국 통화를 사는 것이기 때문에 원화 가치가 오를수록 손해를 본다. 그러나 2011년 시작된 원화 강세 속에서도 외화예금은 꾸준히 늘고 있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개인의 외화예금 잔액은 지난해 말 현재 39억9000만 달러로 전년(32억6000만 달러)보다 22%나 증가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원화값이 가파르게 오를 때도 기업 외화예금에선 잔액이 많이 빠져나갔지만, 개인 외화예금에선 동요가 별로 없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단기 환율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업들은 달러 가치가 더 떨어질 것을 우려해 외화예금에서 자금을 뺐다”며 “이에 비해 당장 돈을 뺄 이유가 없는 개인은 1~2년 뒤 달러가치가 되레 오를 수도 있다고 보고 꾸준히 외화를 매입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무엇보다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려는 수요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환율 예측이 어렵다 보니 한꺼번에 돈을 넣지 않고 분할해 조금씩 외화를 사들이는 것이다. 적립식 펀드의 ‘코스트 애버리징 효과(Cost Averaging Effect)’처럼 달러 하락기에 조금씩 달러를 사두면 평균매수단가를 낮출 수 있다. 이후 나중에 가격이 오를 때 외화를 쓰면 적잖은 환차익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현재 원화값이 최근 10년간 저점보다 고점에 훨씬 접근한 것도 외화예금 수요를 늘린 요인으로 지적된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유학생이나 기러기 아빠, 해외 주재원 등 실수요 목적으로 외화예금을 가입하는 사람이 많다”며 “장기 투자를 염두에 두고 각종 통화를 매달 사는 투자자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주요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달러 환매조건부채권(RP)도 조용히 인기를 끌고 있다. 달러RP는 RP형 종합자산관리계좌(CMA)와 비슷한데, 자금 운용을 원화 채권이 아닌 달러 표시 채권으로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금리는 은행권 외화예금보다 높은 편이다.

 금에 투자하는 골드뱅킹도 꾸준히 인기다. 국제시장에서 금은 미국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골드뱅킹의 수익률은 환율에 영향을 받는다. 국제 금가격이 상승해도 달러값이 떨어지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장기투자자 위주로 골드뱅킹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골드뱅킹을 가장 많이 취급하고 있는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골드뱅킹 계좌 수는 11만9694개로 전년(11만55개)보다 늘었다. 지난해 금값이 크게 오르지 않고 달러가 약세를 보였음에도 투자가 계속됐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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