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삼성전자 상무 "팀원들 딴짓할 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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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이민혁(41) 상무의 손을 거친 베스트셀러들. 사진 왼쪽부터 갤럭시노트2, 출시 반 년 만에 전세계에 3000만대 이상 팔린 갤럭시S3. 벤츠폰(SGH-E700, 2003)은 독일 레드닷어워드, 산업자원부의 굿디자인상 등을 휩쓸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최강자다. 부단한 혁신으로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아이폰’의 아성을 넘어섰다. 2~3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인간의 오감을 충족시키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디자인 3자의 결합의 이뤄낸 성과다.

 이민혁(41)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상무. 삼성전자 휴대전화 디자인의 실무책임자다. 그는 2세대 피처폰부터 최신 스마트폰까지 휴대전화의 발전과 함께 커왔다. 2010년 말 그룹 정기인사에서 오너가를 제외한 최연소 상무 승진자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에피소드 하나. 갤럭시노트2나 갤럭시S3 같은 대표모델의 경우 같은 팀원도 모르게 기획된다. “6명 남짓 소수 정예가 1∼3개월 가량 작업한 뒤 이를 제품으로 개발합니다. 디자인보다 양산을 위한 기간이 더 길어요. 갤럭시S3의 경우 기획부터 소비자의 손에 가기까지 1년쯤 걸렸습니다.”

이민혁 상무

 이 상무는 인터뷰 현장에 패딩 재킷에 머플러를 두르고 나왔다. 대기업 임원과 거리가 먼 옷차림이다. 그는 “스스로 특별하다 여기는 게 비결”이라고 했다.

 “애니메이션 ‘쿵푸팬더’를 보면 국수장수 아버지가 맛의 비밀을 묻는 아들에게 ‘비법은 없다, 이걸 특별하다고 여기는 게 바로 비법’이라고 말하죠. 제가 하는 일을 특별하다 여기면 그 생각만큼 팀 운영도, 디자인도 특별히 노력하게 됩니다.”

 그는 소위 명문대 출신도, 유학파도 아니다. 계원예고, 경희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토종’이다. 첫 직장은 삼성자동차, 5년간 자동차 디자이너로 일하다 2001년 삼성전자로 옮겼다. 디자인할 제품의 크기가 갑작스레 작아졌다.

 그는 ‘뺄셈’에 방점을 찍었다. 외양·기능의 단순화를 시도했다. 휴대폰에서 안테나를 보이지 않게 한 첫 모델인 ‘벤츠폰’은 그렇게 탄생했다. ‘블루블랙폰’과 함께 삼성전자의 텐밀리언 셀러(1000만대 이상 판매한 제품)로 꼽힌다. 둘 다 그의 작품이다.

 -시작이 궁금하다.

 “어릴 적 손뜨개 강사였던 어머니는 집안 온 벽에 전지를 붙여놓았다. 어머니가 출근하면 나는 거기 그림을 그리고 놀았다. 여느 집에선 야단맞았을 낙서가 내겐 칭찬받을 일이었다. 먹고 싶은 빵, 입고 싶은 옷도 그렸고, 어머니는 그걸 사다 주셨다. 제대로 묘사하려고 많이 관찰했던 것 같다.”

 -당신에게 디자인은.

 “학교 다닐 땐 디자인을 완성해 모델을 만들면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직장에 와보니 내가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이 시작이었다. 이후 제품으로 완결되기까지 길고도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K-디자인’ 시리즈의 두 번째 대상자였던 SWBK의 이석우(35)·송봉규(34) 공동대표(지난해 10월 30일 24면)도 그의 밑에서 일한 적이 있다. “(이 상무는) 밤샘이 잦은데도 짬짬이 당장의 일과 직결되지 않는 ‘딴짓’을 하며 영감을 얻는 모습이 남달랐다”고 기억했다.

 그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대리 시절 주말엔 무선 조종 자동차 경기에 나갔어요. 점심시간이나 자기 전에 스마트폰 게임 ‘다 함께 차차차’도 즐기고요. 팀원들이 잠깐씩 딴짓해도 눈감아 줍니다. 디자이너는 자유로운 사고를 해야 합니다. 잠시라도 충전의 순간이 필요하죠.”

 -실패한 적은 없었나.

 “실패도 과정이다. 벤츠폰이 나오기 전에도 많은 디자인이 있었고 개발 중간에 포기하는 것도 있다. 여러 아이디어가 하나의 완성품으로 수렴된다. 옴니아도 그렇다. 옴니아가 없었다면 갤럭시가 나올 수 없었을 거다. 디자이너로서 마음 아픈 제품은 아니다.”

 -애플과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그쪽은 잘 모른다. 그냥 본질적 얘기인데, 우린 직업적으로 꿈꾸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디자이너가 마냥 꿈만 꾸는 직업은 아니다. ‘이런 게 세상에 있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지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정말 이루고 싶은 꿈이라면.

 “해마다 디자인과 졸업생이 3만 명에 이른다. 이중 대기업에 들어오는 이는 소수다. 디자이너들이 일할 저변을 넓히고자 한다. 꿈의 공장이랄까, 디자인 아지트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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