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소비위축에 재고 땡처리 나선 대형마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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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22일 경기도 동두천시에 위치한 ‘무궁화’ 상품 창고에 쌓여 있는 ‘파워 세제’ 박스를 직원들이 옮기고 있다. 24일부터 열릴 롯데마트 창고털이 세일에서 팔 물건이다. [사진 롯데마트]

22일 경기도 동두천시의 세제회사 ‘무궁화’ 상품 창고. 1650㎡(약 500평)짜리 창고 3동 안에 '파워 세제' 박스가 사람 키 높이인 5겹으로 빽빽이 쌓여 있다. 무려 1만5000박스로, 9㎏짜리 세제 3만 개 분량이다.

 지난해 하반기 약 5만 개를 생산했는데 이 중 2만 개만 팔리는 바람에 고스란히 떠앉은 재고다. 이 회사 이규혁 전무는 “불황이라 소비자들이 대용량 실속상품을 찾을 것이라 보고 기존 4㎏짜리를 9㎏으로 늘려 20% 싼 특별상품을 만들었는데, 이마저 안 팔렸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전무는 “이 제품 재고를 빨리 털고 다른 신상품을 내놔야 그나마 역신장을 면할 것 같아 개당 기존보다 1000원 더 내려 7900원에라도 팔기로 했다”고 말했다.

 규제와 소비 위축으로 대형마트 매출이 급속히 꺾이자 협력업체·납품농가가 거센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판매 부진을 넘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고와 ‘현금 가뭄’이란 악재로 피 말리는 생존 싸움을 벌이는 처지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급기야 롯데마트는 24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창고털이 세일’을 하기로 했다. 판매가 기준으로 540억원에 달하는 2400여 개 품목을 최대 50% 할인한다. 설 전에 협력업체와 농가들이 쌓아 놓은 재고를 털고 현금 흐름을 돌려 보자는 고육책이다. 흡사 휴·폐업을 앞둔 골목상가들이 재고 정리차 벌이는 ‘땡처리 세일’을 방불케 한다. 롯데마트 최춘석 상품본부장은 “1월 1~20일 매출을 뽑아 보니 지난해 동기보다 무려 25%나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며 “이 정도면 마트·협력업체 할 것 없이 생존을 걱정해야 할 비상 상황이라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세일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의 창고털이 세일에 합류한 월드그린은 이번 세일에 한해 거래 물량 2000t의 10%에 해당하는 찹쌀 4㎏ 5만 포를 기존 가격의 절반 수준인 9900원에 내놨다.

  월드그린 이승원 상무는 “지난해 흉작으로 찹쌀을 구하기 힘들어 계약재배 농가로부터 웃돈을 주고 물량을 확보해 놨는데, 예상보다 20~30% 덜 나가 농민들에게 잔금도 못 주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재고털이를 위해 판매 방식까지 뜯어고쳤다. 마리 단위로 파는 치킨을 무게를 달아 파는 것. 프랜차이즈 치킨업소에서 주로 취급하는 닭은 한 마리가 700g, 800g, 900g인데 이보다 더 크거나 작은 닭은 팔리지 않아 양계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롯데마트 상품기획자(MD)들은 그래서 크기가 들쑥날쑥한 이들 닭을 쪼개 튀겨 100g당 550원에 행사 기간 팔기로 했다. 일명 ‘킬로(Kilo) 치킨’이다. 고등어·임연수·가자미 등 냉동 생선도 종류와 관계없이 무게를 달아 100g당 800원에 판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재고가 남는 건 수산물·육류도 예외가 아니어서 냉동 재고가 하염없이 쌓이고 있다”며 “판매 협력업체들의 유동성 문제를 풀기 위해 짜낸 고육지책”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 노병용 사장은 “최근 납품업체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재고와 자금 부담 어려움이 위험선을 넘어섰다는 걸 절감했다”며 “이번 행사가 끝난 뒤 3일 만에 현금으로 대금을 즉시 지급하겠다”고 덧붙였다.

 홈플러스도 22개 제수용품의 자체 마진을 대폭 축소, 22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과일·조기·한우·닭·떡국 떡 등을 지난해 설 대형마트 세일 때보다 평균 26.2% 더 가격을 내려 파는 행사를 열기로 했다. 이마트 역시 11~17일 중소패션업체 의류 재고 500여만 점을 최대 50% 할인해 파는 창고털이 행사를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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