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대기업 빵집’ 주인들의 이유 있는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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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지난해 12월 12일 서울 구로동의 동반성장위원회 앞에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빵집 주인 100여 명이 위원회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려고 모인 것이다. 이 장면이 뜻밖인 이유는 시위 참가자들이 흔히들 말하는 동네 빵집 주인이 아니라 지탄의 대상이 돼버린 대기업 빵집, 즉 파리바게뜨의 가맹점주들이기 때문이다. 대형 프랜차이즈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할 경우 그 피해가 자신들에게 미치게 되니 지정을 중단해 달라는 요구였다.

 이 사건은 외형만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르는 것이 어떤 모순을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다. 대형 프랜차이즈의 경우 같은 간판을 달고 있는 빵집의 숫자가 많아 언뜻 보면 대기업 같지만, 실상 가맹점 각각은 나 홀로 빵집들과 같은 동네 빵집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빵집들 사이의 갈등은 동네 빵집들 간 싸움의 성격이 강하다. 한쪽은 프랜차이즈 동네 빵집들이고, 다른 한편은 나 홀로 동네 빵집들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아니라 같은 ‘다윗’끼리의 싸움인 셈이다.

 다행히 동반성장위원회는 빵집 프랜차이즈에 대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한 달 뒤로 미뤘다. 들리는 말로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를 생계형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대기업의 일부로 볼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빵집 문제에 개입한 것이 자신들의 실수임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면 다행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대립이라는 프레임이 흔들린 사건은 이것 말고도 또 있었다. 위의 시위가 있기 하루 전인 12월 11일 서울역 앞 광장. 이번에는 농민과 중소 제조업자들 2000여 명이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규제를 중지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빵집 주인들의 시위가 프랜차이즈의 성격을 보여줬듯이 서울역 앞의 이 시위는 대형마트의 성격을 잘 드러내줬다.

 오늘날의 대형마트는 이마트·홈플러스 등 대자본이 펼쳐놓은 멍석에 수많은 농민과 중소기업 영세 상인이 어우러진 거대한 하나의 생태계다. 대형마트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사람은 농민이며, 거기서 파는 자체상표(PL) 상품의 공급자는 무명의 중소 제조업자들이다. 따라서 대형마트를 규제하면 협력 관계의 농민과 중소기업이 피해를 본다. 농민과 중소 제조업자들에게 대형마트는 재래시장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높은 소득을 보장하는 사업 파트너인 셈이다.

 빵집 프랜차이즈와 대형마트의 사례는 시장에서의 경쟁이 개별 기업이나 상인끼리의 경쟁만이 아니라 수많은 기업과 상인이 얽혀 있는 생태계 사이의 경쟁임을 잘 보여준다. 기업 정책의 방향도 그런 관점에서 다시 짤 필요가 있다. 사업의 외형이 크다고 규제하고, 작다고 보호하는 정책은 해롭다. 그보다는 오히려 좋은 생태계가 더 많이 생기도록 장려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더 많은 농민과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이 좋은 생태계, 현대적 생태계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 생태계 안에 대기업이 끼어 있더라도 말이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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