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아·동성애자 20대, 가장 두려웠던 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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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소설가 김혜나에게 요가는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소설가란 꿈이 삶의 방향을 바꿨다면 요가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줬다고 했다. 자신을 바로 세우자 글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여전히 불편했다. 김혜나(31)의 신작 장편소설 『정크』(민음사)는 그랬다. 그의 전작 『제리』(2010)보다 더 파격적이다. 과격한 성애와 자학적인 피어싱 등 호스트바와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방황하는 20대의 삶을 충격적으로 그린 『제리』는 발표 직후 문제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흔들리는 청춘, 『정크』에서도 루저(패자)의 삶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더 불편한 것은 한 발 디딜 곳조차 없이 사회의 가장자리로 내몰려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27세의 성재는 ‘루저 중의 루저’다. 첩의 자식으로 태어난 사생아에 동성애자이자 비정규직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사회적 편견의 3종 세트’를 떠안고 있다.

 성재가 가장 두렵고 무서운 것은 삶이다.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고, 끝나거나 달라지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기만 하는 쓰레기(junk) 같은 삶은 그에게 굴레이자 속박이며 저주다. 현실은 완고하다. 무너지지 않는 벽이다. 주인공은 약과 화장의 그늘에 숨어 현실을 망각하고 변신한다.

 “주인공은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라 여겨요. 약을 먹고 화장을 해 자신을 잊고 싶지만 또 존재가 잊혀질까 두려워하죠. 약도 세게 못하고 자신을 끝까지 몰아가지도 못해요.”

 화장을 지운 진짜 나를 바라보는 것은 성재에게 두려운 일이다. 아버지가 있지만 내 아버지가 아니고 애인이 있지만 내 애인이 아닌, 무엇 하나 가지지 못한 초라한 모습만 남아서다. 주인공을 이처럼 극단으로 몰아치는 이유는 뭘까.

 “진짜 희망을 말하고 싶었어요. 진짜 희망은 진짜 절망 속에 존재하니까요. 바닥이나 진창까지 무너진 사람만이 희망을, 빛을 가질 수 있어요.”

 성재뿐 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은 세상의 잣대로 보면 쓰레기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사람들은 미화된 것을 보고 싶어하죠. 루저 논쟁이 벌어지고, 88만원 세대 이야기를 하며 대졸자의 좌절과 절망은 주목하지만 대학을 못 가고 일하는 청춘, 유흥업소 등을 전전하는 사람들이나 성 소수자는 사회에 존재함에도 이야깃거리도 아니죠. 열어보지도 않고 삭제하는 정크메일처럼요.”

 그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개인적 경험에 기인한 바도 있다. 요가 강사로 일하며 소설가로 활동하지만 그는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냈다. 중학교 때부터 결석과 정학을 반복하다 상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퇴학 처분을 받은 뒤 자퇴해 공고로 옮겨 간신히 졸업장을 받았다. 대학은 언감생심이었다.

 “『제리』 속 주인공처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매일 술에 취해 비틀댔어요.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술에 취해 새벽 첫차를 기다리며 ‘내 삶이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내리 6개월 소설책만 읽었어요. 그리곤 대학에 가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죠.”

 간절했지만 소설가라는 꿈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5년 동안 신춘문예 등에서 미끄러지기만 했다. 대학을 나와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소설 속 청춘처럼 절망과 좌절에 허우적댔다. 우울증이 왔다. 그러다 요가를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욕망을 내려놓고 나를 세우니, 내 안에 빛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울증을 앓을 때는 세상이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았는데 결국 삶을 어렵게 만드는 건 내 자신이더군요.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계가 변해도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그는 앞으로도 존재감을 상실한 20대, 좌절하는 젊음의 초상에 매달리겠고 했다. 절망과 좌절을 나누고 공감한 후에야 이를 극복할, 나아가 없앨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젊은 작가, 참으로 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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