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터뷰란" CNN앵커, 벌떡 서 JTBC 女기자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좋은 인터뷰란 볼룸댄스를 추는 것과 같다”는 리처드 퀘스트(왼쪽)는 인터뷰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JTBC 안착히 기자에게 춤을 권유하며 자신의 인터뷰 철학을 설명했다. CNN의 경제산업 분야 전문기자인 리처드 퀘스트는 쉽고 재미있게 뉴스를 전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김상선 기자]

리처드 퀘스트(50). 미국의 케이블채널 CNN의 유명 앵커 겸 경제 전문기자다. 시끄럽고 분주하다. CNN 경제프로그램 ‘퀘스트 민즈 비즈니스(Quest Means Business)’와 ‘비즈니스 트래블러(Business Traveller)’를 진행하는 그는 기존의 격식을 깼다. 단정한 차림의 앵커들이 점잖게 진행해온 경제뉴스를 ‘쇼’로 바꿔놨다. 강한 영국식 악센트의 큰 목소리, 긴 얼굴,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스튜디오 안을 휘젓고 다닌다. 딱딱한 경제산업 뉴스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웃음을 짓게 된다. 한국을 처음 찾은 그를 17일 오전 서울 서소문로 중앙일보 9층에서 JTBC·중앙일보가 만났다. 그는 TV 속 리처드 퀘스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침 전날 발생한 항공기 ‘드림라이너’ 불시착 사건으로 새벽에 일어나 CNN의 긴급 방송을 마치고 온 참이라고 했다. 한 시간 반 동안 그의 목소리는 옆 회의실에까지 들릴 정도로 크고 경쾌했다.

안착히(JTBC 정치부): 이렇게 만나 기쁘다. 서울에 와서도 일만 하나.

 퀘스트: 늘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일한다. 언젠가 출장 중 하루가 남아 여기저기 구경하러 다녔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

 박혜민(중앙일보 피플&섹션): 방한 목적은 뭔가. 혹시 박근혜 당선자 인터뷰라도 예정돼 있나.

 퀘스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을 인터뷰할 예정이다. 대기업들 주요 임원들도 좀 만난다. 다보스 포럼이 가까워져서 이틀밖에 시간이 없다. 한국을 더 경험하고 싶은데 아쉽다.

 안: 첫 방한인데 인상은.

리처드 퀘스트는 자신의 이름을 딴 경제 프로그램인 ‘퀘스트 민즈 비즈니스’를 월~금요일 주 5회 진행하고 있다. [중앙포토]

 퀘스트: 네 단어로 요약하자면 흥미진진하고(exciting) 활기차며(vibrant) 크고(big) 에너제틱(energetic)하다. 아직 한국에 대해선 잘 모른다. 다른 문화를 단번에 이해하긴 힘들다. 한번에 모든 걸 파악하는 게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이번에 사람들을 만나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게 되면 요만큼(손으로 가리키며) 이해하게 될 거다. 그 다음에 또 와서 경험하고 또 이만큼 더 이해하고. (그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제발 나에게 예의를 차리지 말라. 내가 장황하게 말하기(rambling) 시작하면 중지시켜라, 제발. TV 진행자가 자기 목소리에 취해 지껄이는 것보다 나쁜 건 없다.

 박: 당신이 진행하는 ‘퀘스트 민즈 비즈니스’와 ‘비즈니스 트래블러’가 CNN 간판 프로그램인데.

 퀘스트: 한마디로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숫자를 얘기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숫자는 의미가 없다. 나는 지난 25년간 숫자에 대한 편견과 싸워왔다. 분명 이 빌딩 안에도 비즈니스는 지루한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을 거다. 하지만 비즈니스는 지루한 게 아니다. 당신 시계를 보자. 그걸 왜 샀나. 당신 남편이 선물한 것이라고? 당신 남편은 자신이 힘들게 번 돈을 그 시계에 쓰겠다는 의식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 스웨터도 마찬가지다. 수없이 많은 스웨터 중에서 그걸 고른 게 바로 경제다. 돈은 윤리적으로 중립적이다. 좋은 일에 쓰일 수도, 나쁜 일에 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쓰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안: 한국에는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이 있다.

 퀘스트: (손으로 테이블을 쾅 치며) 바로 그거다! 그 말, 정말 마음에 든다. 적어놨다가 프로그램에 써먹어야겠다. 바로 그게 내 철학이다. 한국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고 있다. 돈을 버는 건 어려운 일이고 돈을 쓰는 시간에도 한계가 있다.

 안: 당신이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을 인터뷰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자, 버핏씨. 그래서 우리 엄마가 돈을 어디다가 투자해야 한다는 겁니까”라고 질문하던 장면이 인상에 남는다.

 퀘스트: 워런 버핏은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불리는 명사이지만, 그는 서민적이다. 난 그런 그와 공감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기로 마음먹었던 거다. 만일 그에게 프로페셔널하게 투자 기법을 물었다면 그 역시 프로페셔널하게 답했을 거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우리 어머니가 어디다 투자해야 하느냐고 물었기 때문에 그도 자신의 엄마를 떠올릴 것이고 우리는 단숨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사실 난 인터뷰할 때 ‘어머니’를 가끔 써먹는다. 내 어머니도 그걸 좋아한다. 어머니를 매개로 던진 질문에 사람들은 쉽게 답하지 못한다. ‘우리 어머니도 그걸 좋아할까 아닐까’ 한 번 더 생각한다. 인터뷰의 예술은 상대방을 짜증 나게, 화나게 해서 ‘한 건’ 하는 게 아니다. 지금 표면적으로 발생하는 현상 밑에 깔린 것들을 마치 양파 껍질 벗기듯 벗겨내는 거라고 생각한다.

 안: 인터뷰 준비는 어떻게 하나. 관련 자료를 많이 읽고 수집하는 식인가.

 퀘스트: 인터뷰 전에 나는 그들이 어떻게 답할지를 상상한다. 그들을 알고 서로 교감하는 게 중요하다. (그는 이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이리와 보라. 좋은 인터뷰란 볼룸댄스를 추는 것과 같다. 두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자 하면 아름다운 춤이 된다. 좋은 인터뷰도 두 사람이 같은 스텝 안에 있을 때 이뤄진다. 나는 트롯댄스를 추는데 상대는 왈츠를 주고, 다른 이는 탱고를 추는 것 같은 인터뷰는 나쁜 인터뷰다. 내가 존경하는 인터뷰어라면 바버라 월터스, 로빈 데이, 크리스티안 아만포 등이 있다.

 안: 원하는 답을 받을 때까지 12번 같은 질문을 하는 BBC의 유명 앵커, 제러미 팍스만은 어떤가.

 퀘스트: 그는 천재다. 하지만 난 그 방법에 동의하진 않는다. 누구도 내 질문에 반드시 답변해야 하는 건 아니고, 법으로 강제할 수도 없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의 답변을 미리 예상하되 그 외에 다른 어떤 것을 끄집어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단,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게 있다.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하는 거다. 수조원의 손실을 본 회사의 대표가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고 말할 권리는 없다.

 안: 우리가 아는 리처드 퀘스트라는 인물은 매우 흥미롭다. 혹시 숨겨진 다른 면은 없나.

 퀘스트: 그러니까 조용하고 수줍어하는 리처드 퀘스트를 말하는 건가. 방송에선 시끄럽게 떠들다가 집에 가선 뜨개질하고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하하하. 그런 리처드는 없다. 물론 방송에서 나의 일부를 과장해 보여주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방송에 거짓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원래의 나를 보여줘야 한다. 오우! 그러고 보니, 지금 나의 무대인 텔레비전 스크린을 만드는 바로 그 나라에 와 있군!

 안: 그렇다면 약간 문란한 리처드 퀘스트는 어떤가. 2008년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된 리처드 말이다. 그때 당신은 ‘잘못된 보도’라고 한 걸로 기억하는데.

 퀘스트: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정말 후회스러운 사건이었다는 말뿐이다. 진정한 팩트는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좀 다르다. 하지만 그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안: 12번을 물어도 마찬가지인가.

 퀘스트: 12번을 물어볼 수는 있겠지만 내 답변은 같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하고 싶다. 이 세상 누구에게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지나오기 위해선 가족과 친구, 동료의 도움이 필요하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서 당신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 매일매일 그렇게 활기차게 일할 수 있는 특별한 비결이 있나.

 퀘스트: 신비의 묘약은 없다. 단 한 가지, 잠을 잘 잔다. 나처럼 일이 불규칙하고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30분 동안 e-메일을 체크하고 주요 뉴스를 확인하면서 하루를 정리한다. 그리고 따뜻한 코코아를 한 잔 마신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기를 쓴다. 만년필로.

 안: 일기에는 뭘 쓰나.

 퀘스트: 아침에 일기를 쓰는 이유는 전날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싶어서다. 주로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쓴다. 그리고 내가 간 장소들과 어제를, 내가 감사해야 할 순간들을 기록한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창밖의 공원을 보면서 약 30분 동안 일기를 쓴다. 그 30분은 나만의 시간이다. 그 시간 없이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 않다. 일종의 명상 같은 것이다. 명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주로 ‘내가 가스비를 냈던가. 세탁세제를 사야 하는데’ 같은 생각만 떠올랐다. 그래서 명상 대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박: 당신은 대학에서 법을 공부했고 변호사 자격도 땄다. 왜 저널리스트가 됐나.

 퀘스트: 내가 나이 40이 됐을 때 가장 후회하지 않을 일이 뭘까 생각했다. 일곱 살 때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방송을 들었는데 대체 어디서 이런 소리가 나는 건지 궁금해 라디오를 만지작거리곤 했다. 방송을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신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곤 한다. 내가 한 말과 이름이 신문에 인쇄돼서 나오는 건 마법 같은 일이다.

 박: 온라인 신문은 어떤가.

 퀘스트: 나는 온라인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를 온라인으로도 읽고 종이잡지로도 읽는데 종이잡지로 읽는 편이 훨씬 만족스럽다. 온라인으로 뭔가를 읽는다는 건 테이크아웃하는 중국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먹을 땐 좋은데 나중에 별로 만족스럽지가 않다. 나는 이제 50세다. 젊은 세대들은 신문을 집어 드는 것을 생각조차 안 해 안타깝다.

 박: 거대 미디어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들 한다. CNN은 어떤가.

 퀘스트: TV 앞에 모여 저녁 뉴스를 보던 시대는 지나갔다.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문제다. CNN은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컴퓨터, 모바일 등 다양한 미디어에 뉴스를 공급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도 한다. 나는 그 누구도 답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CNN도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하고, 호된 고난을 겪으며 성장할 것이다. 다행히 CNN은 브랜드와 규모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드림라이너 항공기가 불시착했는데 구글을 쳐보니 100여 가지 기사가 검색됐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것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와 데일리 텔레그래프 등 유력 언론이다. 기사의 질을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시대다.

 안: 한국에는 최근에 4개의 새로운 방송 채널이 생겼다. 우리는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리처드 퀘스트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퀘스트: 가장 중요한 건 콘텐트다. 콘텐트가 단단해야 한다. 콘텐트를 재미있는 스토리로 엮어서 보여줘야 한다. .

 안: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

 퀘스트: 우리는 회의할 때 한 가지 원칙이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덜 익은 아이디어라 해서 비난하지 않는다. 그 아이디어가 별로 좋지 않다는 얘긴 하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그 방에서 가장 나이 많은 에디터가 얘기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의 생각을 그대로 반복하는데 우린 그렇게 하지 않는다. 덜 익은 아이디어를 내놓는 사람들을 격려한다. 사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그 방에서 가장 젊은 사람으로부터 나오곤 한다.

2010년 2월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이명박 대통령(오른쪽)과 인터뷰하고 있는 리처드 퀘스트. [중앙포토]

 박: 한국과 세계 경제는 어떻게 전망하나.

 퀘스트: 한국은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다. 중국과 미국이 주요 수출국이다. 재정적자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미국은 성장을 지속할 수 있고, 미국이 성장을 계속할 경우 한국의 경제도 정상화될 것이다. 한국 경제의 근본 체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미국 경제가 나빠지면 중국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경제는 앞으로 2년이 가장 중요하다. 재정적자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미국의 시스템이 와해될 수 있다. 오바마 정부가 2년 후면 2기 레임덕에 빠진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유럽은 전 세계인들의 골칫거리다.

 안: 가장 인상 깊었던 인터뷰 대상은.

 퀘스트: 달라이 라마, 빌 클린턴, 휴 헤프너다. 휴 헤프너는 인생 전부를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한 사람이다. 1950년대 등장한 플레이보이의 버니걸을 생각해보라.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암울한 상황에서 순진무구하고 재미있는 상징을 만들어 사람들을 위로했다.

 안: 당신은 80년대 밴더빌트대학에서 라디오 방송 뉴스디렉터로 일했다. 당시 이렇게 유명해질 거라고 생각했나.

 퀘스트: 난 내가 유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겸손한 게 아니라 사실이다. 물론 사람들이 길에서 알아보긴 한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저널리스트일 뿐이다. 난 병을 고치는 의사도 아니고, 지구상의 가난을 없애는 데 도움을 준 것도 아니고,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단지 어떤 이들의 하루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사람일 뿐이다. 그것이 내 일의 목표다. 나는 거기에서 만족을 얻는다.

 안: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열심히 하나.

 퀘스트: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는다. 무슨 비밀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런데 오늘 아침에 트위터에 메시지가 와 있더라. ‘당신의 발언에 반대입니다. 당신은 엔지니어가 아니네요. 당신을 언팔(트위터 친구 관계를 끊는 것)합니다’라고. 벽돌을 맞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웃음)

 안: 2012년은 어떤 해였나. 그리고 올해는 당신에게 어떤 해가 될까.

 퀘스트: 2012년은 한마디로 감사한 해였다. 올림픽과 미국 대선을 방송했고, 퀘스트 민즈 비즈니스가 풍성해졌다. 올해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순간에 만족한다. 불타는 야망은 없다.

◆리처드 퀘스트는=1962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미국 오리건주 리드대학과 테네시주 밴더빌트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85년 런던 BBC에 인턴 사원으로 입사했다. 87년부터 이 회사의 금융 담당 기자로 활동하다 2001년 CNN으로 옮겼다. 지금은 ‘퀘스트 민즈 비즈니스’(2009년부터), ‘비즈니스 트래블러’(2012년부터) 등 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미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