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그만 좀" 쌍용차·한진중 노조 손사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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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민·정이 참여하는 ‘쌍용자동차 정상화 추진위원회 발족식’이 17일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강명원 평택시민단체협의회 회장, 김규한 쌍용자동차 노조위원장, 이재영 새누리당 의원, 이유일 쌍용자동차 대표이사, 황규태 사무국장(원유철 새누리당 국회의원실)이 발족식을 마친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발족식에는 김선기 평택시장도 참석했다. 이들은 정치권에서 추진하는 국정조사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사진 쌍용자동차]

#1.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은 16일부터 평택 공장에서 서명을 받고 있다. 회사에 맞서 투쟁 의지를 다지려는 게 아니다. 국정조사를 하지 말라는 청원을 하기 위해서다. 노조원 민광춘(47·조립1팀)씨는 “자꾸 이런 일(정치권 개입)이 생기면 기업 이미지만 나빠진다”며 “우리가 열심히 해서 기업부터 살려놓겠다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끼어들면서 쌍용차에선 최근 어렵게 성사된 무급 휴직자 전원(455명) 복직에도 균열이 생겼다. 기존 직원들은 20~30%의 급여 삭감을 각오하고 동료의 복직을 수용했다. 그러나 국정조사 얘기가 계속 커지자 “이럴 거면 복직은 없는 걸로 하고 급여나 제대로 받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2.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6일 오후 부산 영도구의 한진중공업 천막농성장을 찾았다. 대선 패배 이후 자성하겠다며 시작한 ‘회초리 민생 방문’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날 오전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은 문 위원장의 방문을 철회해달라고 민주당 부산시당을 항의 방문했다. 김상욱 노조 위원장은 “마치 다 해결해줄 수 있을 것처럼 잔뜩 기대만 부풀려 놓고 결국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드는 게 정치권”이라고 말했다.

‘정치 버스’가 다시 노동 현장으로 몰려가고 있다. 그러나 2년 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때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오히려 노조가 앞장서 손사래를 치고 있다. 도움도 안 될뿐더러 문제만 키운다는 반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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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차 노사와 지역 시민단체협의회, 지역 국회의원들은 17일 아예 국정조사를 반대하는 조직까지 만들었다. ‘쌍용자동차 정상화 추진과 국정조사 반대를 위한 노(勞)·사(使)·민(民)·정(政) 정상화 추진위원회’다. 이유일 쌍용차 대표는 “국정조사를 하게 되면 쌍용차 정상화는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차는 지난해 12만여 대를 판매해 구조조정 직전 수준의 판매를 겨우 회복한 상태다. 노조는 더 펄쩍 뛴다. 김규한 쌍용차 노조위원장은 “공적자금 얘기까지 나오는데 우리는 망할 때마다 돈 받아먹는 악덕기업으로 찍히기 싫다”며 “그럴 돈 있으면 소외계층에게 주고, 우리는 제발 내버려 둬라”고 말했다.

추진위에 참석한 ‘정(政)’은 지역 국회의원과 평택시장이다. 이재영 새누리당(평택을) 의원은 “내 지역이어서 속속들이 내용을 안다”며 “정치권 일부에서 실정도 모르고 국정조사로 해결하자는 주장을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통합당 소속의 김선기 평택시장도 추진위 간담회에서 “정치권에서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어 더 힘겹다”며 “쌍용차가 생산량을 늘리는 것만이 정상화를 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 시장은 소속 당인 민주당이 국정조사를 주장하고 있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당적과 관계없이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정치인들이 한목소리로 “국정조사가 득보다 실”이라고 주장하지만 중앙당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쌍용차 국정조사를 1월 임시국회의 전제로 삼고 있다. 새누리당도 중심을 못 잡고 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김성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새누리당 간사는 17일 “당의 공식 입장은 쌍용차 국정조사 반대가 아니다”며 “이한구 원내대표의 입장이 그렇다(국정조사 반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큰 홍역을 치른 한진중공업에선 정치권이 다시 들어오면서 노노 갈등이 커지고 있다. 정치권 개입을 반대하는 한진중공업 노조는 생산직 조합원 751명의 73%(547명)가 가입한 단체다. 공장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는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에 소속된 조합원 비율은 27%다. 문희상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천막농성장만 다녀갔다. 사측 관계자는 “수주 가능성이 큰 유럽 선주가 다음주 회사에 올 계획인데 농성장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걱정”이라며 “일감이 있어야 복직도 더 많이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상경대학장은 “정치권이 노동자·자본가라는 대결 구도를 통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정략적으로 경제 문제를 자꾸 이용하다 보면 오히려 일자리를 늘리는 데 걸림돌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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