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택시법 거부권 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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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첫 국무회의가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취임 이후 처음으로 세종시를 방문해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국무회의는 청와대에서와는 달리 원탁회의로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세종청사 개청으로 인해 우려되는 행정 비효율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모든 부처가 각별히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 개정안’(택시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세종청사에서 처음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다.

 이 대통령은 택시법안에 대해 반대의견을 낸 국무위원들에게 “국가의 미래를 위한다는 관점에서 (택시법을) 논의해 달라”며 “지방자치단체의 의견도 공식적으로 받아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대통령으로서 국무위원들의 결정을 존중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총리가 중심이 돼 충분한 의견을 제시해 달라”고 했다.

 택시법은 이날 검토 안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황식 총리가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 장관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말을 꺼내자 장관들이 반대 의견을 쏟아냈다. 거의 만장일치 수준이었다.

 ▶권도엽 국토부 장관=고정 노선이 아닌 택시의 (대중교통 인정은) 문제인데, 해외에도 이런 사례는 없다. 여객선·전세버스 등 기타 교통수단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택시업계가 재정지원을 과도하게 요구할 경우 지자체에 재정 부담이 갈 수 있다.

 ▶이재원 법제처장=법제처의 법률 분석상 대중교통의 정의가 다른 법안과 혼돈이 있을 수 있다. 재의 요구(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택시를 지원해 주는 곳은 지자체다. (택시를 지원토록 규정한 택시법이) 지자체의 자주재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 또 법률 통과 시 지자체와 상의가 없었다. 지자체의 입장이 곤란할 수 있다. 얼핏 2011년 버스 지원액이 1조3000억원에다 택시지원액이 약 4800억원이라고 한다. 여기에 추가로 (지원하게) 하면 지자체 부담이 상당해질 수 있다.

 대국회 업무를 담당하는 고흥길 특임장관만 “일반 여론은 법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면서도 “국회에선 정부 출범에 앞서 통과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과, 과도한 재정지출을 요하는 법률 등이 과연 복지와 어떤 개념으로 될 수 있는지 경계선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자는 의견이 혼재한다”는 말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무위원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언급은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무위원들 간 이견이 없어 다음 국무회의인 22일에 거부권 행사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세종시 이전 부처의 혼란상에 대한 걱정도 했다. 이 대통령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세종시가 빠른 시간 내에 공직자들이 근무하기 좋은 환경이 되고 시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정상화되도록 정부와 세종시가 같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지금 인수인계 과정, 경제위기 상황이란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세종시로 정부 부처가 이주하고 있어 근무 환경이 불편하고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중요 부처의 효율이 떨어지는 건 국력 낭비고 국민에게 죄송한 일이다. 우리가 처한 여건 때문에 국력이 손상되고 국정이 지장받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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