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담당자 "쓸모없는 '잉여 스펙' 첫째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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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올해 대학교 4학년생이 되는 김유리(24)씨의 겨울방학 목표는 ‘스펙 5종 세트’ 정복이다. 스펙 5종 세트란 인턴·봉사활동·수상 경력·자격증·영어를 뜻한다. 광고업종에 취직을 원하는 김씨는 방학 동안 친구들과 ‘광고공모전 스터디’를 하고 있다. 토익스피킹·OPIC 등 영어 말하기 평가 점수가 없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씩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다. 김씨는 “1~2년씩 해외 연수까지 다녀온 친구들을 보면 스펙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송정한(29)씨도 스펙 쌓기에 열중이다. 굴착기 ·한자(2급) 등 10여 개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자격증을 따는 데 들인 비용만 수백만원, 여기에 들어가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송씨는 ‘피눈물 나는’ 투자를 했던 셈이다. 지금도 ‘한국사 인증’이라는 11번째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가를 전전하고 있다. 송씨가 취업전선에 나선 지는 올해로 3년째. 송씨는 “주위에 10개 내외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보통”이라며 “20개 안팎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구직자들에게 ‘스펙’은 취업을 위해 꼭 잡아야 할 동아줄이다. 하지만 고용시장 수요자인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스펙 쌓기가 취직에 꼭 도움이 되진 않는다”는 입장이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인사담당자 2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3.1%가 “입사지원자의 경력사항에서 비중이 낮거나 필요 없는 ‘잉여 스펙’이 있다”고 답했다. 잉여 스펙은 평가 비중이 낮거나 특별히 직무와 관련 없는 ‘쓸모없는’ 스펙으로, 마음 급한 취업준비생들이 이력서를 한 줄이라도 더 채우기 위해 쌓은 자격증이나 경험 등을 일컫는 말이다.

 인사담당자의 절반 이상은 잉여 스펙 중 첫째로 ‘한자 능력’을 꼽았다. 석·박사 학위, 봉사활동 경험, 동아리 활동, 제2외국어 등이 뒤를 이었다. 이에 대해 커리어의 황은희 컨설턴트는 “실제로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난 뒤 한자를 직무에서 활용하는 기업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사담당자들은 잉여 스펙이 생기는 이유로 ‘스펙으로만 인정받는 사회 풍토’(37.5%)와 ‘취업준비생들의 무분별한 스펙 집착’(36.1%)을 많이 꼽았다.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제도 결핍’(15.9%), ‘기업들의 안일한 평가기준’(10.5%)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인사담당자 세 명 중 두 명은 ‘잉여 스펙이 채용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인사담당자 절반은 ‘직무와 특별히 관계가 없다면 (잉여 스펙은) 필요 없다’고 답했고 ‘단순히 이력서 채우기에 급급해 보인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16.2%였다.

 그렇다면 실제 인사담당자들이 보는 꼭 필요한 자격 조건은 무엇일까. 한화케미칼 장창섭 인력운영팀장은 “회사에서 신입사원에게 요구하는 덕목은 일에 대한 열정이나 빠른 문제 해결 능력”이라고 밝혔다. 직장 상사로부터 지시를 받았을 때 의도를 재빨리 파악해 대응하는 사원을 뽑고 싶다는 것. 기업은행 하준식 인사팀 과장도 “고객을 응대하는 대인관계 능력과 경제학적 지식이 입사에 가장 중요하다”며 “웃음치료사 같은 이색 자격증 취득에 힘쓰기보다는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한 번이라도 더 읽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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