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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현실(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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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공화당은 집권당으로서의 권력을 다루는 자세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듯하다. 내년 총선에서 또다시 집권하더라도 근대화를 기약하는 획기적인 방안이 없는 한 공화당은 곤란한 처지에 놓일 것이다. 집권당으로서 국민에 대한 올바른 자세와 뚜렷한 근대화의 방안을 여태껏 마련하지 못한 것이 공화당의 큰 고민일 것이다.』
최고위원을 지낸 P씨의 견해이다. 5·16 혁명에 가담했다가 혁명과업의 담당세력으로 결정했던 공화당의 역외에 선전 주체세력들의 공화당관은 대체로 이 P씨의 의견과 대동소이하다. 역시 전 최고위원인 O씨는 같은 논평을 공화당에 가하고 있다.
『61년 5월 16일 새벽 나라를 구하기 위해 혁명의 깃발을 들고 한강을 건널 때의 순수한 정신은 5년을 지내는 동안 많이 얼룩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순수했던 애국심이 끝내 더럽혀지리라고는 보지 않으며 새로운 기풍의 진작으로 바로 잡혀질 것을 확신한다.』
공화당은 그들이 담당한 과제로서 근대화를 위한 강력한 지도력과 민주주의 질서를 여기에 조화시켜 나가는 데에 초점을 모았다. 김종필 공화당 의장이 언젠가 여기에 따르는 난관을 분석하여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후진국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시행착오」를 무던히 겪었다』고-. 그는 『서구사회가 피와 땀으로 온갖 어려운 고난과 싸우며 가치를 쌓고 있는 동안 우리 국민은 민족감상주의에 빠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감상주의를 헤쳐 나와 이지주의의 물결에 근대화 작업을 실어보려는 데에 공화당의 끝없는 고민이 있었고 또 실패가 있었다는 진단이다.
5·16의 「정열」과 공화당과의 편위는 현 제도의 단면에서마저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동환 원내총무는 『공화당이 바로 잡아야 할 점은 정부와 당과 국회의 「불협화」에도 있다. 정부에서 공화당의 다수를 믿고 맘대로 하려는 무리 때문에 민주정치가 어려운 고비에 접어들곤 했다』는 것이다.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될 때마다 국회는 거의 행정부의 의사를 확인하고 넘어가야 하는 정도로 약질로 변했던 것이라든지 터무니없는 법안들이 당도 모르게 튀어나와 정계를 진동시키는 일이라든지 이런 일이 모두 「여당」의 자세가 휘청거린 데서 나온 것이 사실이다. 「당」과 「행정부」-사실 이런 이원방정식으로 한국정치의 전체를 도식화할 수는 없지만 공화당으로서는 이런 단순 도식 만으로써도 풀이를 잘하지 못하는 고민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당과 행정부의 상관관계에서 모든 것이 결행되는 것은 아니다. 당이 행정부의 시녀가 아니듯 행정부도 당의 종복일 수만은 없다. 이효상 국회의장이 이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자주 보여왔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당과 행정부의 중간매개체로서 「정책」이 개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책의 바탕을 이루는 「기조적인 것」의 소유주가 당과 행정부의 어느 쪽으로도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데 공화당의 현실적인 고민이 싹튼다.
그래서 김 원내총무는 『공화당은 민족적 민주주의를 체계화시켜 「비전」을 뒷받침할 만한 「이즘」을 확립해야 한다』고 전제를 내세운다. 그러면서 『국토 양단의 비극 때문에 「이즘」을 위한 의욕적인 행동이 백안시 당하는 불치의 고질을 수술로 도려내야 한다』는 대담한 처방까지 제시한다.
확실히 공화당의 현실적인 고민을 파악하는 자세도 5·16 당시보다 상당히 현실화했다. 아주 일반론으로 공화당의 병리를 따지면서 근대 민주정치의 교각 위에 여당을 올려놓아 보이는 이도 있었다.
박준규 의원은 『권력이 존립하려면 대중과 지식인이 받들어야 한다. 이런 관계에서 정치인이 접근해 가는 관례를 키워야 한다』고 말하고 「대중」과 「지식인」이 소외된 풍토 속에서는 정치가 제대로 명맥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일반론에서 박 의원은 여당의 「상」을 찾았다.
문제는 역으로 대중조작이 가능한 지의 여부에 따라 당이 현실적인 존립을 결정하게 된다고 하겠다.
「막스·웨버」는 민주정치에 있어서 대중조작을 정치인의 정열, 책임, 통찰력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것은 사실상 여론을 지도할 수 있는 신념있는 영도력으로 옮겨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김종필 공화당 의장은 대중조작의 기본을 이렇게 말했다.
『후진국에서는 경제적 빈곤, 국제적 유형무형의 압력 등을 극복하면서 먼 앞날을 목표로 민족을 신념과 지혜로써 이끌어 나가야 하는 강력한 「리더쉽」이 요구된다』고 「리더쉽」에 구했다.
공화당이 풍기는「이미지」는 『정부치적의 PR로』(백남억 정책위원장의 말) 나타내겠다는 것이지만 공화당이 당면한 현실은 그렇게 정연한 것은 아니다. 공화당이 안고 있는 문제는 5·16의 정열을 쏟을 배출구(일부에서는 벌써 정열이 식었다고 보지만)를 갖는 것, 또 당과 당 밖의 정치기구와의 관계를 정돈하는 것, 당 운영자금의 조달에 있어 「채늘」의 단순화와 양성화 등이 아닐까 싶다.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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