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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재」는 무리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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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정치는 민주화를 절실한 과제로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질서를 형성시킬 수 있는 「기초적인 조건」에 있어 흠결이 많았던 우리의 정치현실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성장시키지 못했다. 아직도 이같은 여건은 충분히 개선되지 않았으며 장벽은 그대로 남아 있다.
우선 기초적인 조건 가운데 흔히 들 수 있는 것은 사회집단의 동질성이다. 이것은 한국이 계급사회가 아니라는 점에서 어느 국가나 민족보다는 사회구조면에서 민주제도를 훌륭히 키워 나갈 수 있는 행운아라는 증좌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체질면에서 본다면 민주주의의 정신지주를 이루는 「자유」「평등」사상은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을 받고 있고 또 개개인이 이를 정당히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 「후버」연구소에서 최근 20년간의 각 국 주요 일간지(프레스티지·페이퍼스)의 민주주의의 식에 대해 연구한 결과 「자유」와 「평등」에 대한 어휘는 더욱 강렬해지고 강조되는데 입헌제의 기구에 대해서는 점점 약화되어가는 추세를 보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것은 단적으로 말해 민주정은 동태적인 데서 유래하는 것이지 정태적인 고형화한 제도에서 생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가져온 것이라 하겠다. 자유와 평등한 기초 위에선 개인의 독립성-이것이 민주주의의 기초적인 조건이며 공식이다.
「헤브라이」의 예언자는 『「비전」없는 곳에 민족은 망한다』고 말했다. 5·16 군사혁명 후 갑자기 대두한 말이 이 「비전」이란 말이다. 4·19 이전의 우리의 정치지도 형태를 일반적인 분류에 따라 따진다면 오히려 <전통적인 「리더쉽」>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하겠다. 여기에는 노화한 정치이념이 강인한 배타성을 띠고 모든 것을 일률화하고 있었다. 4·19 이후 민주당 정부가 들어섰지만 구조적인 민주체제를 유지하는 데만도 땀방울이 밸 정도의 흔한 <대표적 「리더쉽」>을 유지해왔다. 이런 두 가지의 민주정을 우리는 대조적으로 분명히 경험할 수 있었다. 5·16이 왔을 때(특히 그것이 군사 「쿠데타」였기 때문에 민주정치와 가교할 수 있는 아무런 연고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 「비전」설정이란 과업은 민주정의 소개지대에 이채로운 가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비전」은 막연한 정치철학이나 신조가 아니라 피부로 느껴지는 정치행정으로 해석되어 나타났다. 그 때까지의 정치에 「비전」이 없었고 정치목표가 생경한 것이었다는 것 때문에 5·16 후의 새로운 질서에 그나마 목표가치를 부가하려고 해보았었다.
이른바 <창조적 「리더쉽」>의 등장을 바랐던 것이 그것이다. 무너져가는 질서, 사라진 질서 뒤에 생동하는 자유와 평등이 올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당시의 군부도 「민주주의의 파괴가 아니라 구명작업」(당시의 박정희 장군의 말)을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혁명주체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들로부터 개혁의 과제를 맡는다고 했으며 조국근대화와 민족적 민주주의를 지표로 한다 했다.
5·16은 「민족」의 주체성과 이익을 공통된 가치로 보고 창조적 가치로 「클로스·업」 시켰다. 그러나 이 목표 수행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가를 포함한 많은 문제에는 그 평가가 일치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이 창조가 「행정」에 치우쳤기 때문인 듯하다.
부패를 없애고 부정을 자르고, 불법을 바로잡겠다고 하던 것이 5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 지. 물론 정치지도자에 모든 것을 맡기고 그에 의존할 수는 없다. 요즘의 지도자란 벌써 「전체적 인격」이 아니기 때문이다(A·W·굴드너 교수). 그는 어떤 상황 속에서 성원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방향으로 집단을 형성해나가는 사람으로 속화되어 있다. 말하자면 민주제 하에서 지도란, 기능이나 역할일 뿐 인격은 아니다. 여기서 한국인이 전통적으로 생각한 지도자상과 현실적인 지도자간에 「갭」이 생겨난다.
행정이 미만해지고 행정을 위해 무리가 생기고 정책적 결정이 우선하는 일이 왕왕 많아지며 또 그것이 예사로 강행될 때 「정치부재」가 생겨난다.
정치부재는 「비전」의 불모지대를 가져오고 행정만이 난무하게 한다. 여기에 창조적 「리더쉽」은 사라지고 민주정은 형해만 남는다.
이런 정치적 혼돈이 정서 되지 않을 때 어디 엔 가 잘못되어 있다는 인식은 하면서도 분석을 못한다. 척 량의 도구인 「비전」이 없기 때문에 분석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사회의 분열을 막는 가교에 대한 구상은 한 층 막연해진다. 또 여·야가 극도로 대립했을 때 여·야는 어떤 정치조직체를 통해 분열을 건져야 하는 가에 머리를 앓게 된다. 여·야의 관계 뿐 아니라 여나 야의 내부의 정서도 문제가 된다. 정치인의 신분이 이권에 줄을 닿기 쉬운 존재로 전락하고 정치권력에 의존하여 부패가 더욱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무엇보다 이런 현상은 경제가 성장발전하고 산업구조가 다기화 할 때 더욱 묘한 양상을 띠게 된다.
명년에, 우리는 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5·16을 맞은 지 벌써 5년이 된다. 5년 동안의 정치상이 어떠했으며 명년 선거를 계기로 한 우리의 새로운 민주정의 상은 어떠해야 할 것인지, 개인의 독립이 유지되고 경제적 성장이 균형을 잡고 창조적 「리더쉽」이 어떤 「비전」을 갖추어야 하는지….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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