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의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미국무성은『미군기와 월남 상공에서 공중전을 하다가 중공 쪽으로 도주하는 공산측의 비행기에「성역」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중대성명을 했다. 그러나「성역」이란 낯선 말 때문에 한국의 신문기자는 잠시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성역은 물론 신전이나 사원을 뜻하는 영어의 "Sanctuary" 번역어이다. 성역이라고 번역했다해서 망발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는 종교적 의미를 떠나 금렵구나 죄인의 비호권이나 단순한 피난장소까지도「생크튜어리」라고 부른다. 그래서 "Bird Sanctuary"라고 하면 신전에 집을 짓고 사는 새가 아니라, 조류 보호지를 뜻하는 것으로 성역하고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말이다.
어째서 성역이란 말이 죄인비호나 피난처란 뜻으로 사용되었는가? 그것은 옛날의 유태사원, 특히 종교만능이었던 중세교회의 성역엔 법률의 힘이 미치지 못했던 탓이다. 관원에 쫓기던 죄인도 일단 성역으로 들어가면「닭 쫓던 개가 울타리 쳐다보는」격이 되었다. 그래서 성역은 성스러운 자리이기 때문에 도리어 범죄자가 숨는 더러운 장소가 되어버린 모순을 낳았다.
그것은 인간의「아이러니」를 상징한다. 한국전 때는 압록강이 이북이「생크튜어리」였다. 적기를 추적하다가도 압록강 너머로 도망치기만 하면 눈물을 머금고 기수를 돌려야만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숙원이었던 통일의 기회를 잃었고, 중공군은 그 편리한「생크튜어리」를 이용하여 마음놓고 남침을 감행했다. 만주를 침격하자고 주장했던「맥아더」 장군이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자리를 물러섰다.
만주는 성역이 아니라 다름 아닌 마역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월남전에 성역이 없다고, 성명한 국무성의 그 성명이 10여년만 빨라 한국전에 있었던들 미국은 번지는 중공의 세력을 막기 위해 오늘처럼 고전하지는 않았을 일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삽으로 막아야한다는 속담과 같다.
악인은 예로부터 성역을 이용해왔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번 똑똑히 인식해둘 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