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부장판사 "순간적으로 욱해서 실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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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웅 부장판사는 사법연수원 19기(1990년 수료)로 군법무관을 거친 뒤 93년 수원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했다. 광주지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역임한 후 지난해 2월부터 서울중앙지법 형사 22부 부장판사로 일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매일 재판에 들어가기 전 법정 문 앞에서 주문처럼 외웁니다. ‘내가 말하고 싶을 때 한 번만 더 참자. 참자’. 습관처럼 외우지 않으면 자꾸 잊게 되요. 판사는 판단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제대로 판단하려면 내가 말하기보다는 듣는 게 우선이죠. 당사자가 사건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요.”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김대웅(47·사법연수원 19기) 부장판사는 법조계에선 ‘경청(敬聽)의 법관’으로 통한다. 법정에서 당사자들의 얘기를 끊지 않고 충분히 들어주고 피고인들이 원하는 증거나 증인을 가능한 한 받아주기 때문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 9일 김 부장판사를 포함한 10명의 법관을 ‘2012 평가 상위 법관’으로 선정했다. 김 부장판사는 유일하게 자신을 평가한 변호사 6명에게서 모두 100점을 받았다. 하지만 이날 서울변회 평가에서 일부 판사는 막말과 고압적인 법정 태도로 비판을 받았다. ‘경청의 자세’로 재판을 이끌어가는 그를 10일 만났다.

 -우수 법관으로 선정됐다.

 “다른 판사들도 다 비슷하게 할 텐데 쑥스럽다. 나이가 들면서 재판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30대일 때는 정의를 바로 세워야 된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펴는 피고인을 보면서 뭐라고 한 적도 있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저 사람의 잘못된 주장을 내가 바로잡아줘야 저 사람도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참고 더 많이 들어줘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얘기를 더 들어준다 해서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다. 효율적으로 빨리 재판을 끝내는 것보다는 충분히 얘기할 기회를 주는 게 우선순위가 더 높다고 본다.”

 -답답한 피고인을 보면 화날 때도 있을 텐데.

 “나도 인간이니 당연히 화내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나야 매일 재판을 하는 사람이지만 피고인 입장에서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일 테니까. 주장하고 싶은 증거들도 가능하면 다 채택해주고 진술도 다 들어줘야 패소해도 승복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사건을 처리하기에 시간이 부족하지 않나.

 “어쩔 수 없다고 본다. 판사가 자기 시간을 조금 더 투자해야지. 재판을 할 때는 가능한 한 기회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원칙이 있다. 만약 증인신문을 하게 되면 양측에 필요한 시간을 미리 물어보고 원하는 만큼 시간을 준다. 그러다 보니 피고인들이 최후 진술을 하면서 ‘얘기할 기회를 충분히 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막말하는 법관들도 있다.

 “순간적으로 욱해서 실수할 수 있는데 재판 당사자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법정에서는 평등해야 한다. 나는 최근 선고한 홍사덕 전 새누리당 의원이나 지난해 있었던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같은 유명인들을 대할 때나 일반인을 재판할 때나 똑같이 기회를 준다.”

 김 부장판사는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피고인에게 직접 진행 사항에 대해 설명해주고 다음 절차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길어야 5분인데 변호사와 검사가 다 알아들었다 해도 한 번 더 설명해줍니다. 법정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피고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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