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5만대 공급과잉, 감차가 먼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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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택시 문제의 근본 원인은 ‘공급과잉’이다. 최근 16년간 택시 승객 수는 한 해 49억 명(1995년)에서 38억 명(2010년)으로 22%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택시 면허대수는 20만5835대에서 25만4955대로 24% 늘었다. 그중에서도 개인택시 증가가 두드러졌다. 95년 11만8463대에서 2010년 16만3287대로 38%나 늘었다. 회사택시는 8만7372대에서 9만1668대로 3%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택시 면허권을 쥐고 있는 단체장이 표를 의식해 개인택시 면허를 무분별하게 내준 탓”이라며 “2004년부터 지역별로 택시의 숫자를 제한하는 택시총량제가 도입됐지만 이후에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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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택시정책을 총괄하는 국토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강승필(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정부가 택시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자체에 떠넘겨 온 경향이 없지 않다”며 “앞으로는 중앙에서 강력한 구조조정 계획을 세우고 지방의 동의를 얻어내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택시산업 구조 개선을 위해 도입한 제도가 정치권 로비에 휘둘려 반쪽짜리로 전락하기도 했다. 2009년 개정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은 개인택시 면허를 양도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하지만 이후 시행령에는 ‘법 시행 이전에 면허를 받은 경우엔 개정 규정에도 불구하고 종전의 규정을 따른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법까지 만들어 놓고도 택시 공급과잉 문제를 풀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셈이다.

 한국교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국 택시 25만여 대 가운데 5만여 대가 공급과잉으로 추산된다. 결국 정부 택시정책의 최우선순위는 ‘택시의 대중교통화’가 아니라 택시 숫자를 줄이는 구조조정, 즉 ‘감차(減車)’에 있다. 택시를 버스처럼 대중교통의 테두리로 집어넣어 재정지원을 해주고 택시요금을 올리더라도 공급과잉이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헛일이라는 얘기다. 국토부 관계자는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한 이번 ‘택시법’ 통과는 환부를 정확하게 진단하지도 않고 대충 수술칼부터 들이댄 무모한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택시법’ 통과가 정부가 추진해 온 ‘녹색성장’과 엇나가는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고승영(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대한교통학회장은 “빈 차로 돌아다니거나 고작 1~3명 정도가 타는 택시는 승객 수송 효율성이 낮을뿐더러 버스에 비해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한다”며 “녹색성장을 하겠다는 나라에서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건 한마디로 난센스”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택시법’ 국회 통과에도 불구하고 택시업계를 향해 본격적으로 칼을 빼들 태세다. ‘택시법’ 통과 전에 업계에 협상안으로 제시했던 감차 보상, 공용 차고제, 유종 다양화 등과 같은 지원책은 최소화하고 택시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합리화 방안 추진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택시업계의 로비와 정치권에 더는 휘둘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우선 올 상반기 안으로 ‘택시산업 기본계획’을 마련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반영할 계획이다. 법에 근거해 택시산업 개혁을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다. 첫째가 택시 숫자를 줄이는 구조조정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직접 택시를 사서 숫자를 줄이는 방법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개인택시 양도 횟수 제한, 상속요건 강화 등 제도를 통한 자연감소를 유도할 방침이다. 법인택시의 경우도 승차거부나 부당요금·도급제 등의 사례가 적발될 때 부여하는 벌점제를 강화해 면허를 줄여나갈 계획이다. 정부는 택시의 대당 감차 보상금을 1300만원 정도로 계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는 서울시내 개인택시는 6000만~7000만원, 법인택시는 3000만~4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는 점을 들어 “1300만원은 터무니없이 적다”고 반발하고 있다.

 둘째는 요금체계 개편이다. 고급 교통수단에 걸맞게 택시요금을 올리고, 요금제도 다양화할 방침이다. 택시 경영을 투명화하기 위한 수단도 강구된다. 향후 3년 안에 디지털운행기록계와 카드미터기를 기반으로 한 ‘실시간 택시운행정보 관리시스템’을 전국적으로 구축할 방침이다. 여기에 정보기술(IT)을 보완하면 택시 운전자의 정보, 차량 상태, 현재 위치, 운행 기록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국토부는 이를 통해 택시업계의 불투명한 경영상태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국토부의 이 같은 방침은 ‘택시법’ 취지와 상치하는 것이다. 국토부 김유인 택시산업팀장은 “기존에 택시업계에 지원되던 8247억원 외에 ‘택시법’ 통과 이후 추가로 1조원을 지원하는 것은 검토한 바 없다”고 못 박았다. ‘택시법’에도 구체적 지원 내용은 없다. ‘택시법’이 결국 ‘빈 깡통법’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별취재팀=최준호·김한별·고성표·김혜미·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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