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친인척·측근 사면설, 면구하지 아니한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청와대가 어제 특별사면을 검토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과거에도 새 임금이 나오면 옥문(獄門)을 열어준다고 하지 않느냐. 사면은 정권 교체기에 대화합 조치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군불을 땐 게 불과 나흘 전이었다. 이젠 청와대가 나서 “경제계·종교계를 중심으로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특사 요청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받았다. 비록 청와대가 “시기나 대상은 정해진 게 없다”고 토를 달긴 했지만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이미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을 2주쯤 남겨놓은 시점인 설 연휴를 계기로 사면할 것이란 게 기정사실로 여겨진다. 또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지난해 12월 상고를 포기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전 세중나모 회장, 이 대통령의 사촌처남인 김재홍 전 KT&G복지재단 이사장 등이 1순위로 거론된다.

 사면권은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긴 하다. 그러나 법과 원칙에 반하는 예외적 조치이기도 하다. 발동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말에 국민 화합을 명분으로 사면권을 행사해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해 12월 31일 임동원·신건 두 국정원장과 자신의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75명을 사면한 게 그 예다. 두 국정원장은 유죄를 인정하고 나흘 만에 사면됐었다.

 그때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은 “헌법과 법치주의의 파괴”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 스스로도 임기 첫해에 “법질서를 엄정히 지켜 나간다는 새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새 정부 임기 중 부정·비리에 대해선 공직자와 기업인을 불문하고 단호히 처리할 것”이라고 약속했었다.

 그랬던 이 대통령이 언제부터인가 임기 중 비리자를 사면하더니 이제는 막판 ‘빗장’인 친인척·측근 비리자까지 풀어주겠다고 한다. 이 대통령도 과거 대통령의 잘못을 반복하겠다는 것인가. 박근혜 당선인이 “사면권도 분명하게 제한해 무분별하게 남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한 걸 의식한 건가. 어느 쪽이든 오랫동안 정치적 사면 배제를 다짐했던 이 대통령으로선 참으로 면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