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컵] 프로다운 경기 못 보인 수원

중앙일보

입력

'왕자(수원)와 거지(한국철도)가 옷을 바꿔 입었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평가됐던 수원 삼성과 한국 철도와의 경기에 대회 최대의 이변이 일어났다.

99년 FA컵 당시 1-0으로 수원의 발목을 잡은 경험이 있던 한국 철도는 마음을 비운 플레이로 프로 최고 공격력을 자랑하는 수원의 아성을 조용하고도 거세게 잠재웠다.수원은 FA컵에서 프로가 아마에 패한 5번째 팀으로 이름을 올렸다.

수원은 시종일관 볼에 대한 점유율이 높았지만 제대로 된 패스가 나오지 않았고 체력만 낭비하는 비경제적인 경기를 했다. 탄탄한 수비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한국 철도의 오프사이드 작전에 수원은 '늪'에 빠져 좀처럼 빠져 나오질 못했다.

이겨도 본전인 수원으로선 투지도, 패스도, 하겠다는 의지도 모두 한국 철도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2-0 경기는 거기서 끝났다.

수원으로선 서정원, 데니스, 산드로, 박건하등 주전들을 대거 내세우고도 한국철도에 패하는 망신을 당했다. 아무리 상대가 약 팀이고 아마 팀일 지라도 경기는 싸워봐야 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한 경기였다 . 수원은 '설마'하는 무사 안일주의에 빠져 개인 플레이로 일관, 2년전의 악몽을 되살려야 했다.

후반 총공세로 나섰지만 서정원, 데니스, 산드로의 슈팅이 골 포스트를 맞거나 허공을 향해 날아가는 데 운까지 따르지 않았다. 데니스는 경기가 풀리지 않자 애꿎은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하다 쓸데없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이런 결과는 상대가 강한 저항과 투지로 나온 데다 '설마'하는 마음 자세가 경기가 풀리지 않자 조급한 마음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경기력으로 나왔다.

한국철도가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실행한 반면 수원은 그렇지 못했다. 상대를 얕보다 큰 코 다친 수원의 패인이었다.모든 경기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을 보여준 경기였다.

투지를 앞세워 잔잔한 반란으로 프로 팀을 꺾은 한국 철도에 박수를 보내면서 공은 둥글다는 말을 새삼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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