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첨단기술이 자생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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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소규모 바이오 벤처회사들은 2년 전에 비해 약 10배인 5백여개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열기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 1999년 하반기에 생겨났던 여유자금, 인간지놈 프로젝트 종료 소식, 언론의 집중 보도, '대박'의 꿈을 노리는 투자자와 과학자의 이해가 일치하는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해 생겨난 것이다.

국내 바이오 벤처 업계는 성숙기 전 정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문제는 성숙기로 진입할 자격이 있는 회사가 어떻게 추가자금을 확보하느냐다. 정부의 직접 지원은 의존성을 키우기 때문에 가능한 한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반면 우리 대기업은 모험적 아이디어를 기피하며 단기회수 가능한 복사제품에 의존하고 있는 데다, 벤처회사 특유의 지분구도나 역동성을 이해하는 경우가 드물어 이들간의 전략적 제휴는 아직 한계가 많다. 따라서 바이오 벤처 회사는 일반시장에서 자금을 확보할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코스닥 진입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코스닥위원회가 매출액 규모를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바이오회사들은 크게 첨단기술 중심회사와 전통 바이오업계로 나눌 수 있다. 기술중심회사란 지놈프로젝트.바이오칩.신약 등을 다루는 회사로 그러나 이들은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상당기간 제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매출이 아예 없거나 매우 작을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바이오 열기의 수혜자는 기대와는 달리 전통 바이오 업계가 됐고 기술 중심회사는 도태되거나 매출을 발생시키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원래 사업목표와는 거리가 먼 일반 제품을 팔 수밖에 없게 된다.

미국 나스닥에 진입하는 바이오 벤처 회사의 상당수가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코스닥은 투자자 보호에 너무 비중을 둔 나머지 미래가치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는 제조회사를 편향적으로 육성하고 있어 첨단기술이 자생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최근 발표된 코스닥 퇴출 요건의 강화는 매우 바람직한 조치다. 그러나 매출액으로 진입벽 자체를 불필요하게 높이는 것은 기업은 물론 투자자와 국가적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물론 보완해야 할 점들은 있다.

특히 첨단기술이 난해하고 모험도가 크므로 이를 잘 설명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일이 필수적일 것이다. 그러나 투자 결과에 대한 책임은 시장 논리에 맡기는 것이 건강한 시장경제 확립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정부가 아무리 투자를 하고 지원해 씨앗을 심은들 벤처회사들이 튼튼한 나무로 자랄 수 있는 토양, 즉 주식시장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첨단기술 회사의 대부분은 고사(枯死)하거나 외국기업화해 바이오 한국의 꿈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면에서 코스닥 진입 요건의 개선은 정부의 그 어떤 지원보다도 중요한 바이오 육성 정책이 될 것이다.

金善榮 <서울대 교수.유전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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