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3년내 우승 약속 해냈어요"

중앙일보

입력

1998년 성남 일화(당시 천안) 구단은 박종환 체제 이후 자리를 잡지 못하는 팀을 누구에게 맡길지 고민했다. 장고 끝에 차경복(64.사진)감독을 선택했다.

차감독은 취임 후 "3년 안에 우승하겠다"고 장담했으나 이미 환갑을 지낸 할아버지 감독의 호언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정확히 3년 뒤 프로축구 최고령 감독인 그는 '일을 내고' 말았다.

50대 이상의 축구팬들에게 차경복은 감독이 아닌 국가대표 공격수로서 기억된다. 청소년 대표를 포함, 그는 60년부터 68년까지 무려 9년간이나 태극마크를 달았다.

60,61년 아시아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에 우승컵을 안겼고 64년 도쿄 올림픽 본선에서 뛰는 등 함흥철·김창기·조윤옥 등과 함께 60년대 한국 축구를 이끌었다.

스타플레이어 차경복은 67년 모교인 경희대팀을 맡으면서 감독으로 변신했다.

서른살짜리 풋내기 감독 차경복은 2년여 동안 모교에 다섯번이나 우승컵을 선사하며 명장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69년 중소기업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코치 겸 선수로 뛰면서 역시 팀을 다섯번 우승으로 이끌었다.

우승 제조기라는 명성을 뒤로 하고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상벌위원장·심판위원장 등을 역임하던 그는 96년 프로축구 전북 다이노스가 창단되면서 창단 감독을 맡아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그러나 지병인 신경성 당뇨병으로 고생했고 팀도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결국 그는 2년이 채 못돼 팀을 떠나야 했다.

차감독은 그때 '이제 축구와의 인연이 끝나는구나'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를 악문 투병생활로 건강을 되찾자 때마침 성남에서 감독 제의가 들어왔다.

차감독은 성남의 의기소침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시즌 중 술.담배에 손을 대거나 도박을 하는 선수들을 가혹할 정도의 벌로 다스렸다.

'호랑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러는 중 팀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래알같다는 비난을 받던 성남이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탄탄한 조직력을 가진 팀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차감독은 스스로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요즘도 매일 한시간씩 등산을 하고 경기 전날 밤 늦게까지 상대팀 분석을 하는 '노력하는 감독'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