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윤유선, 판사 남편과 '밥상교육'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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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윤유선씨(오른쪽 둘째) 가족이 지난 4일 서울 자택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남편 이성호씨, 윤씨, 아들 동주군, 딸 주영양. [김성룡 기자]

중앙일보는 올해 연중기획으로 휴마트(humart) 운동을 펼친다. 개인의 똑똑함(smart)에 휴머니티(humanity·인간성)가 더해진 착한 스마트, 즉 휴마트 사회로 가자는 것이다. 우선 ‘가족식사’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공 질서를 지키는 책임 있는 시민은 건강한 가정에서 키워낸다. 식탁은 살아 있는 인성 교육을 실천하는 소중한 자리다.

지난 4일 오후 7시 탤런트 윤유선(44)씨 댁을 방문했습니다. 자상한 아내, 친구 같은 엄마 역할을 극중에서 많이 해온 유선씨.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 준비가 한창입니다. 실제의 모습도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네요.

 남편 이성호(47·서울중앙지법 판사)씨도 퇴근해 집에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주영이(9)는 책을 보며 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맏이 동주(12)가 수학학원에서 돌아오자 가족은 식탁에 둘러 앉습니다. 불고기·관자야채볶음·시금치·가지나물 등 예닐곱 가지 반찬이 놓였습니다.

 “아침은 거의 같이 먹고요. 저녁은 주말 포함해 4, 5회 정도 하는 것 같아요.”(윤유선).

 엄마에게 가족 식사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과입니다. 오전에 촬영이 잡히면 새벽 일찌감치 미용실에 다녀와 식탁을 차리곤 합니다. 밤샘 촬영 뒤 새벽에 귀가한 날도 가족과 아침을 먹고 나서야 잠을 청합니다.

 이 가족의 저녁 식사는 보통 40분 넘게 이어집니다. “엄마, 오늘은 무슨 장면 찍었어?” “아빠, 오늘 어떤 재판 있었어?” 하며 아이들의 질문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재판 내용 중 쉬운 것들을 골라 소개하며 아이들의 생각을 묻곤 합니다.

 “어떤 아저씨가 중국집에 와서 탕수육과 소주 한 병을 시켜 먹고 돈을 안 냈어. 돈이 없어서 자주 그렇게 했대. 어떻게 생각해?”

 “그 아저씨 불쌍하다. 아빠가 탕수육 사주면 안 돼?”(주영)

 “그래도 그건 나쁜 행동이잖아.”(동주)

 아이들은 아빠의 직업을 ‘옮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람’으로 이해합니다. 아빠는 그래서 더욱 자기 판단을 말하기보단 아이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고 싶어 합니다.

 “집에서든 밖에서든 아이들도 함께 있는 시간엔 아이들과 대화를 해야죠. 아이들의 말을 많이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고요. ‘어른들 얘기 하시는데 좀 조용히 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안 좋다고 봐요. 외식할 때 아이들더러 조용히 있으라며 스마트폰 건네주는 것도 더더욱 그렇고요.”

 판사라는 직업 때문에 성호씨는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합니다.

 “끔찍한 형사사건 피고인을 보면 아버지가 무조건 혼을 내거나 강압적인 경우가 많아요. 자라면서 가정에서 쌓였던 분노를 밖에서 표출하는 것이죠. 그러니 적어도 식탁은 가족들이 고민을 털어놓고 대화하는 수평적 공간이 돼야 해요.”

 이들에게 ‘가족식사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동주는 “행복”, 주영이는 “좋은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유선씨는 “당연한 것”, 성호씨는 “넷이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가족이 함께 머리를 맞대는 밥상은 가정의 심장입니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해법을 함께 찾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덴마크 출신의 자녀교육 전문가인 예스퍼 율(미국 뉴욕대 교수)은 “밥상머리의 갈등은 가족 공동체의 필연적인 특성인 만큼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면서 “밥상에서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되 일관성과 책임성을 갖고 동등하게 아이를 대하라”고 말합니다(『밥상머리의 행복한 기적』).

 밥상머리 교육의 효과는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일리노이대가 학업 성적이 우수한 7~11세 어린이 120명을 조사했더니 많은 아이들에게서 ‘가족 식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공통점이 발견됐습니다. 한국에서도 100여 개 중·고교 전교 1등에게 물어 보니 “주중 10회 이상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해왔다”는 학생이 40%에 달했습니다.

 미국 컬럼비아대 약물오남용예방센터(CASA)에 따르면 가족과 식사를 자주 하지 않는 청소년은 식사를 자주 하는 청소년과 비교해 흡연율은 4배, 음주비율은 2배에 달했습니다(2011년).

 하지만 한국에서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 날은 많지 않습니다.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일주일에 서너 번 부모와 함께 식사하는 청소년의 비율은 78.3%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 비율이 58.7%에 그칩니다.

 밥상머리는 인성교육의 산실입니다. 자녀의 학원이나 독서실, 부모의 회식 등으로 건너뛰기엔 너무나 소중한 시간입니다.

  아주대 의대 조선미(정신과) 교수는 “부모들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지만 실제론 컴퓨터나 TV 앞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많다”며 “밥상머리에서 아이들이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가정은 현재 일주일에 몇 번이나 밥상에서 모이십니까. 지난해 10월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식사 횟수는 평균 5.3회였습니다(동화약품 의뢰. 한국갤럽 조사). 중앙일보는 ‘최소한 일주일에 다섯 번은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자’고 제안합니다. 일이 바빠서 어렵더라도 소중한 가족과 마주하는 시간을 만드는 일을 미루지 마세요.

성시윤·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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