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톱 때문에 생긴 일 -『수일이와 수일이』

중앙일보

입력

그러니까 말이죠, 이 기막힌 일은 여름 방학이 끝나기 며칠 전에 벌어졌어요.

저는 그냥 평범한 초등학생이었는데요, 참으로 황당한 일을 겪게 되었지 뭐예요. 휴우… 정말이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어서 한숨만 나와요. 세상에 이럴 수는 없는 거예요. 저랑 똑 같이 생긴 가짜 수일이 녀석이 진짜 수일이인 저를 막 구박하고 집에서 쫓아내다니… 하지만 누구를 원망하겠어요. 다 제가 스스로 만든 일인 걸요. 네? 제가 누구냐고요? 저는 장편 동화 『수일이와 수일이』(우리교육)에 나오는 아이예요.

문제는 제가 놀기를 조금 좋아한다는 거였어요. 여름 방학이 다 끝나가는데 매일 학원을 다니려니까 놀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던 거죠. 사실 놀고 싶어 하는 건 저 뿐만이 아니잖아요? 모든 어린이들은 즐겁게 놀면서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고요.

그래서 저는 그냥 ‘나랑 똑같이 생긴 애가 있으면 그 애를 학원에 대신 보내고 나는 신나게 놀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우리 집 개 덕실이가 좋은 방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겠어요? 손톱을 깎아서 쥐에게 먹이면 그 쥐가 사람이 된다나 어쩐다나… 옛날 이야기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날 밤에 ‘혹시나’ 하며 손톱을 깎아서 쥐가 많이 다니는 곳에 던져 놓았지요.

옛이야기를 재치 있게 변용한 동화
휴우, 또 한숨이 나오네.
어른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라는 말 들어 보셨죠? 그런데 그 말이 딱 들어 맞더라고요. 정말로 쥐가 제 손톱을 먹고서는 저랑 똑같이 생긴 가짜 수일이가 되었지 뭐예요. 처음에는 어찌나 놀랐는지 가슴이 막 두근두근 했어요. 그 가짜 수일이는 다시 쥐로 돌아가고 싶다고 막 훌쩍거렸고요. 그래서 저는 며칠 남지 않은 방학 동안만 가짜 수일이와 함께 지내기로 했어요. 그런데 일이 어찌나 이상하게 돌아가던지… 저는 이렇게 집에서 쫓겨난 불쌍한 아이가 되었답니다.

처음에 가짜 수일이는 사람이 되는 게 싫다고 했어요. 쥐로 사는 게 훨씬 좋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이 녀석이 서서히 마음을 바꾸더니만 이제는 저더러 나가라는 거예요. 자기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농부가 될 거라고 꿈까지 이야기 하면서요. 사람들에게 귀한 음식을 먹게 해 주는 농부야말로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새것만 좋아해서 큰일이고, 그래서 불행한 일들이 자꾸만 벌어지는 거라고 저로서는 잘 이해 안 되는 어려운 이야기까지 하더라고요. 그건 곧 자기가 새로운 수일이니까 헌 수일이인 저는 나가라는 이야기였어요. 으, 이 녀석이 정말…

마음의 키가 자란 진짜 수일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짜 수일이의 말이 다 맞는 것 같기는 해요. 저도 그 동안 너무 새것만 좋아했으니까요. 그렇다고 가짜가 진짜를 대신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가짜 수일이의 마음은 왜 저랑 그렇게 달랐던 걸까요? 며칠 동안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해서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텐데… 그건 그 아이가 쥐였을 때 느낀 감정이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동물의 눈으로 사람을 보면 사람의 어리석음이 잘 보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아무 것도 모르시는 우리 부모님은 가짜 수일이가 학원에도 열심히 가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고 좋아하시니 이것 참… 어휴, 답답해! 이제 제가 누구인지도 헷갈려요. 공부 잘 하고, 싸움도 잘 하는 가짜 수일이와 노는 것만 좋아하고 겁이 많은 진짜 수일이. 세상을 걱정하는 똑똑한 수일이와 그저 맛있는 것 많이 먹으면 기분 좋은 진짜 수일이. 너도 수일이, 나도 수일이. 수일이와 수일이. 아우, 헷갈려. 이젠 저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정말이지 제가 누구인지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하지만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요. 어서 가짜 수일이를 혼내줄 방법을 알아내야만 해요. 그래요, 제 일은 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거예요. 이번 일을 겪으며 그런 똘똘한 생각을 가슴에 품게 되었어요. 그러니 이 고생을 하며 얻은 게 있기는 있는 거네요. 우리 친구들이 저를 좀 도와 주세요. 도대체 가짜 수일이를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최덕수/리브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