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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배달 이색 지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쉰일곱살난 신문 배달원-그의 보조 배달원으로는 열일곱살 난 막내아들이 손을 거들고 있다.
이 부자 배달원은 중앙일보 청량리 보급소에서 일하는 우기명(57·용두동 238·10통 3반)씨와 대현(17·청량 중학 3년)군.
날마다 하오4시가 되면 청량리 채 못 미쳐 답십리 쪽으로 꺾어 도는 길목 퀴퀴한 하수구가 흘러내리는 덜렁이 나무다리에도 생기가 인다. 「잉크」냄새가 물씬 나는 신문 뭉치 한 아름씩 끼고 보급소 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나무다리가 꺼져라 동동걸음을 치는 40여명의 배달원들.
그중에「꼬마 할아버지」라는 애칭이 붙은 우씨의 배달 구역은 보급소에서도 줄달음으로 10분은 족히 걸리는 서울 농대 입구에서부터 회기동 이문동 일원. 두툼한 돋보기 안경테 너머로 흘러내리는 구슬땀을 씻을 겨를도 없이 신바람 나게 골목길과 숨바꼭질하는『신문이요!』멜방으로 걸쳐 맨 신문 3백부가 불티 달아나듯 하는데도 애독자 집에 모두 배달해 주려면 빨라야 1시간 반, 보통은 2시간이 걸린다 했다.
맨 첫집 S의원에서부터 내딛는 숨찬 발걸음이 멎는 곳은 K대학교「캠퍼스」를 가로질러 가파른 음악당 언덕배기. 그 거리는 약 10「킬로」. 햇살 싱그러운 잔디밭에서 막혔던 숨길을 돌리고「백조」한 대를 피워 무는 그 맛. 몇 개 신문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꼬박 8년 동안 그는 단 하루도 이 길을 거르는 날이 없었다. 『신문이 결근할 수 있느냐』는 그의 말처럼.
『이 때의 통쾌한 기분이란 배달원이 아니고는 모를 겁니다.』 앞자락이 다해진 허름한 양복 섶을 활짝 헤치며「꼬마 할아버지」는 열띠어 말한다. 호외가 나올 때면 오히려 반갑지만 질색인 것은 비오는 날의 배달, 몸은 흠뻑 젖을 망정 신문은 적실 수 없다고 보물짐 싸듯 신문 뭉치를 품에 안고 흙탕길을 헤매다보면 시간이 1시간은 더 걸린다는 것이다.
그 뿐만도 아니다. 새벽 호의 배달 길에 으르렁대는 「불도크」의 마중을 달래느라 남몰래 식은땀을 훔치고, 쌀쌀한 식모양의 푸대접에 역겨움을 씹으며 그의 양 이마엔 굵다란 주름살이 갈래갈래 찢어졌다.
『독자 하나 떨어지는 것이 피 한 방울 떨어지는 것 같다』면서 독자「서비스」론도 일석. 『신문을 아무렇게나 내 던지는 신문 배달 시대는 이미 지났어요』배달을 하기 전에 그는 날마다 배달 구역을 한 번씩 돌며 새로 이사오는 사람의 짐을 날라주기도 하고 눈에 띄는 대로 마을의 일손을 거들어 준다. 마치「세일즈·맨」처럼. 그는 서울 태생. 선린상업(현 선린상고)을 나와 경전(현 한전)에서 10여년 일한 적도 있고 한때는 목재상을 경영, 남 못잖게 돈도 벌어봤다. 지금도 판잣집이나마 내 집이 있고 운전사인 큰아들 벌이로 6식구의 생활은 그럭저럭 꾸려 나갈 수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아직은「복덕방 영감 노릇」을 하기 싫어서 아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왔다는 그. 그는 앞으로 65세까지는 배달원을 하겠다고 팔뚝을 걷어 붙였다.
생활의 자립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학교에 다니는 막내아들 대현군을 끌어낸 것은 3년 전부터 자신이 체득한 자립의 얼을 온 젊은이들에게 불어넣고 싶단다. 이 부자 배달원의 한달 수입은 약 5천원꼴. 이 돈은 모아서 막내동이의 대학 진학비에 쓰겠다고 벼르고 있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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