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소식] '레스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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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영화가 다시 뜨고 있다. 나니 모레티나 로베르토 베니니라는 이름으로 제한적으로 소개되었던 이탈리아 영화들이 이제 다양한 장르와 소재로 여러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작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던 가브리엘 무치노의 '울티모 바치오(L'ultimo bacio, 마지막 키스)'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을 주제로 자국내에서도 상당한 흥행을 기록했고 동경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자배우상을 받은 로베르타 토레의 '안젤라(Angela)'도 평론가들에게 상당한 관심을 불러 있으켰다.

작년 칸느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소개되어 관객상을 받은 엠마누엘 크리알레세의 '레스피로(Respiro)'도 마찬가지다.

"숨쉬다"라는 뜻의 '레스피로'는 로셀리니의 '스트롬볼리(Stromboli)'나 비스콘티의 '테라 트레마(Terra trema)'를 떠올리게 하는 시실리아의 섬을 배경으로 마을에서 정신이상으로 취급받는 한 여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광기라는 규정 자체가 사회적 규범이 얽어맨 편견이 아닐까? 어린 두 아들까지 (다른 가족의 암묵적 동의하에) 주인공 그라지아(발레리아 고리노)의 행동을 제약하고, 가끔식 저지르는 그녀의 돌출행동은 주위 이웃들로부터 치료를 위해 큰도시의 병원으로 보내자는 압박을 받게 된다.

집단의 양식을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 광기로 치부해 버리는 속단은 한 여인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결국 떠나야 하는 압박을 피하기 위해 그라지아는 아들의 도움을 받아 잠적해버리고 바다에 빠진걸로 위장한다.

사실 이 영화는 한 여인의 광기에 대한 암울한 영화가 아니라 사회의 속박을 풀어가는 자유에 대한 영화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바다는 그라지아가 유일하게 안식할 수 있는 평화의 근원이고 그라지아가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그래서 받아들여지는 수단이된다. 영화 내내 눈부시게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도 영화의 주제가 무엇인지 확실히 이야기한다.

실제 시실리아의 한 섬인 람페두사(Lampedusa)에 전해오는 전설같은 내용을 감독은 구체적 시나리오 하나 없이 몇 달간의 섬생활로 아름다운 시적 화면을 만들어 냈다. 그라지아와 남편 피에트로 외에는 모두 실제 섬주민들을 배우로 기용해 사실성을 더했고 그라지아 역의 발레리아 고리노는 이탈리아 영화 기자상을 받았다.

박정열 명예기자 (jungyeul.park@linguist.jussieu.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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