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 관리종목 거래하는 '증시장의사' 활개

중앙일보

입력

부도난 종목이나 관리종목 등 문제주식만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이른바 '증시 장의사'들이 활개치고 있다.

증시 주변에서 '장의사'로 불리는 이들은 문제 종목이 상장폐지될 때까지 '폭탄 돌리기'를 통해 고수익을 노린다. 폭탄 돌리기'란 특정 종목에 개입해 주가를 끌어 올려 시세차익을 챙긴뒤 개인투자자 등에 떠넘기는 것으로, 이 경우 개인들은 고스란히 손해를 입게 된다.

"장외에서 시가의 절반값에 주식 삽니다. 필요하신 분은 핸드폰 연락 주세요."

최근 부도로 하한가 행진 중인 T사 사이버 게시판은 헐값으로 주식을 사들이려는 증시 장의사들로 넘쳐나고 있다.

주가가 곤두박질하지만 하한가 매도잔량이 워낙 많아 할 수 없이 장외에서 덤핑으로 주식을 넘기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다.

인터넷 ID가 '졸라맨'인 증시 장의사는 부도 공시가 뜨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그는 "해태제과.동아건설 등 과거 사례를 분석해 적정 주가를 결정한 뒤 장외 매입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부도 종목은 4~6번의 하한가를 친 뒤에야 대량거래가 터지기 때문에 보통 60% 정도 싼 값에 주식을 매입한다.

'참용기'란 ID의 증시 장의사는 "정해진 가격이 없는 만큼 협상 솜씨가 노하우"라며 "부도가 나거나 상장폐지된 종목 가운데 극히 일부는 자력회생이나 자산가치가 높아 뜻밖에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런 점을 노려 소형 인수합병(M&A)전문회사들이 흑자부도를 내거나 자산가치가 높은 관리종목을 사들이기도 한다.

일단 주식을 사들인 증시 장의사들은 좀처럼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졸라맨의 경우 매입가격 위에서 대량거래가 터지면 순식간에 매도하고, 매입가격보다 주가가 더 떨어지면 공매도를 통해 손실을 메운다.

특히 상장폐지를 앞둔 종목은 이들의 단골 대상이다. '참용기'는 "정리 매매 시점에는 주가가 하루에 50% 이상 폭등하거나 절반 이하로 폭락하기도 한다"며 "일반 투자자들이 '폭탄 돌리기'에 뛰어들면 손실을 입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들도 리스크(위험)관리에는 철저하다.'졸라맨'은 "한 종목에 투자자금의 10% 이상을 넣지 않고 절대 하루 이상 주식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테러 사건 때 주식을 보유하고 하루를 넘기다 30%의 손실을 입었다.

증시 장의사끼리는 상장폐지되는 문제 종목 거래를 "염을 한다"고 부른다.'참용기'는 "염을 할 때는 어차피 작전과 주가조작이 끼어들 게 마련"이라며 "최근 섣불리 뛰어드는 개인투자가들이 많아 수익율은 더 좋아졌지만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문제 종목의 장외 매매는 개인간의 거래여서 불법은 아니지만 전문 지식이 없는 투자자들은 피해를 입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철호 기자 news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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