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에 제일은행장, 어떻게 평가받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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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프레도 호리에 제일은행장이 임기를 1년여 남기고 23일 전격 사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호리에 행장은 우리정부가 제일은행을 미국계 뉴브리지캐피털에 매각하면서 지난 2000년 1월 첫 외국인 시중 은행장이 됐다.

금융권에서는 호리에 행장이 지난 3월께 하이닉스에 대해 1천억원 규모로 지원한 신규여신이 부실화되면서 제일은행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털이 문책성 인사를 단행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호리에 행장 취임전 손실은 제일은행 인수 당시 풋백옵션(사후손실보전)계약에따라 정부로부터 보전을 받지만 취임후 부실여신은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이런 부실여신 증가에 대해 뉴브리지가 책임을 물었다는 것이다.

호리에 행장에 대한 금융권의 평가는 엇갈린다.

호리에 행장은 올초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 방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힌데 이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협약에도 '제일은행이 불리하면 참여 안한다'는 조건을 달고 가입, 주목을 받았다.

정부의 입김을 강하게 받았던 시중은행이 수익이 나지 않는 대출에 대해 단호히'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힌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으며 오랜 관행에 젖어있던 은행권에서는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호리에 행장의 행동이 은행의 수익성을 근거로 한 만큼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일부에서는 은행 공동의 책임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애써 외면한 것은 '자행 이기주의'에 다름아니라는 비난도 제기됐다.

제일은행 내부에서도 '경영 마인드를 정착시켰다'는 반응과 '기계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며 폐쇄적이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호리에 행장은 시중은행에서는 처음으로 사채대출과 유사한 고금리 대출상품인`퀵 캐시론'을 도입, 시중은행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제일은행 노조는 호리에 행장이 일본식 고금리사채 도입을 선진경영기법으로 호도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었다.

호리에 행장이 받은 스톡옵션에 대한 비난도 재임기간 내내 끊이지 않았다.

스톡옵션으로 약 412만주(제일은행 전체 주식의 78.9%)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호리에 행장은 올초 스톡옵션 계약을 1년여간 은폐했다는 비난과 함께 행사 가격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스톡옵션 행사가격은 올초 주당 5천79.6원으로 했다가 가격평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확산되면서 금융감독위원회는 9천834원으로 행사가격을 올려 승인했다.

호리에 제일은행장은 그러나 이날 행장사퇴로 스톡옵션을 행사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상법에 따르면 스톡옵션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3년의 근무기간이 필요한데 이를 채우지 못했다.

제일은행 관계자는 "호리에 행장이 이사로 계속 남아있고 자진사퇴를 했다면 스톡옵션을 행사할 수 있지만 두가지 모두 해당사항이 없다"고 설명했다.

호리에 행장 취임후 제일은행은 자기자본 이익률이 28.33%, 자기자본비율 14.01%로 경영상태가 호전됐고 올 상반기에 작년동기보다 40% 늘어난 2천억원의 순이익을내 일단 외견상 경영지표는 크게 향상됐다.

금융계 관계자는 " 제일은행이 이번 호리에 행장의 전격 사퇴후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립 기반을 확고히 다져 앞으로 은행권에 새로운 경영 사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서울=연합뉴스) 양태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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