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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 풍류-이조 때는 진상한 관록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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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여행자들이 전주에서 양식을 먹고 경주에서 맥주를 마셨다면 자랑이 될 수 없을 뿐더러 그 사람이 얼마나 풍류를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이다. 전주선 비빔밥, 전주선 법주… 이래야만 「맛」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제 여행「시즌」. 이곳 저곳의 「맛」을 따라가 본다.
예로부터 이 고장 전주에는 『음식 솜씨 나쁜 며느리 쫓겨나는 신세』라는 말이 있다. 이토록 전주사람들은 옛날부터 음식 만드는 솜씨에 마음을 써왔다. 전주의 비빔밥·콩나물해장국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이 밖에 「전주팔미」라는 게 예부터 전해오고 있다.
국문학의 대가 가람 이병기 박사는 시조에서
선왕골 파라시는
아직도 아니 붉고
인제봉 열무
팔매의 하나라지
배급탄 안남미밥도
이 맛으로 먹히네
하고 노래했는데 이 팔미란 전주의 팔미를 일컬은 것으로 ⓛ선왕골(인후동) 파라시(조홍시) ②인제봉열무 ③오목맥황포묵 ④남천(전주천)모자(천어의 한종류) ⑤신풍리(송천동) 호박 ⑥소양리서초(서초=담배) ⑦삼례무우 ⑧한내(삼례천)게(해)등이다. 하나 이 팔미는 모두가 요리이전의 한 재료에 불과한 것이다.
이씨 조선 때엔 멀리 진상까지 했다는 나들 나들한 「오목대 창포묵」은 다른 고장의 메밀묵·청포묵어나 도토리묵에 비할 수 없을 이만큼 맛이 좋아 전주명물 비빔밥에는 꼭 들어간다.
생강을 갈아 갖은 양념에 삼삼히 담아놓은 싱건지 맛은 생각만 해도 삼삼한 맛에 눈이 스르르 감긴다.
늦서리가 내린 뒤의 것이어야 한다는 「신량중호박」-추운 동짓달 긴긴밤 포근포근하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호박떡. 말만 들어도 온 집안에 웃음이 도는 것 같다.
말뚝만큼이나 큼직한 「참예무우」는 김장철이면 멀리 서울까지 팔려 가는데 보기만 해도 한창 꽃피는 큰아기들 종아리 만큼씩 하는 크기에 밋밋하여 성성한 총각김치 담그기엔 이 이상 없을 것 갈다.
전주의 일품요리는 뭐니뭐니해도 비빔밥과 콩나물해장국밥이 아닐 수 없다.
비빔밥에 있어서는 「옹팡집」의 이숙자(70)할머니 솜씨라야만 한다는 건 전국의 식도락가들은 모두들알고 있다. 콩나물해장국은 「삼배집」(삼배옥)의 이봉순(65)할머니의 솜씨라야. 【전주 이치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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